정수근, 생애 두 번째 올스타전 MVP
롯데 이적 후 방황…이제 일어설 때
2004년 올스타전은 롯데 정수근(30)을 위한 무대였다.
롯데 이적 첫 해부터 기대치를 밑돌아 의기소침해있던 정수근이었지만, 사직구장서 열린 그해 올스타전에서 톱타자로 출장해 5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 1도루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당당히 생애 첫 올스타 MVP를 수상했다. 1989년 허규옥에 이어 롯데 이적 첫 해 올스타 MVP 계보를 잇는 순간이기도 했다.
▲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러나 결과적으로 2004년 올스타전 MVP는 정수근에게 호사다마가 되고 말았다. 그해 전반기 막판 당한 목 부상이 올스타전 출전 이후 악화됐다. 자칫 목 부상이 악화돼 후반기 공백을 염려해 가볍게 출전만 하고 빠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치고 도루까지 성공하자 의욕이 샘솟았다. 열광적인 부산 관중들 앞에서 정수근은 맹활약하며 올스타전 MVP를 차지했지만, 목 부상 악화로 후반기 첫 경기부터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더 큰 불운은 정확히 일주일 뒤 있었다. ‘해운대 음주사건’ 등에 얽혀 프로야구 최초로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받게 됐다. 20경기 결장 뒤 해제됐지만, 정수근 개인이나 소속팀 롯데로서는 굉장한 불운이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른 후에 판단하게 된다. 정수근의 올스타전 MVP와 FA 대박은 목 부상이 악화되고, 괜한 화를 부르는 독이 됐다. 때때로 복은 화도 부르는 법이지만, 정수근은 그 화에 대한 대처가 너무 미흡했다.
▲ FA 먹튀
2003시즌 종료 후 두산에서 FA로 풀린 정수근은 그해 최대어였다. 삼성을 비롯해 여러 구단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수근의 선택은 의외로 롯데였다. 정수근은 6년간 총액 40억6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이 제시한 계약조건이 더 좋았지만, 정수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산으로 갔다.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다시금 불러 모아 침체된 롯데와 부산의 야구열기를 되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부산은 정수근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 모든 것이 장밋빛 미래였다.
그러나 정수근은 자신의 플레이를 잔뜩 기대한 팬들을 실망시켰다. 2004년 올스타전을 제외하면 이적 후 사실상 한 번도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적 첫 해부터 왼쪽 허벅지와 목을 차례로 다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이미 2003년 두산 시절에도 정수근은 오른쪽 허벅지 부상으로 겨우 FA 자격을 채운 터였다.
잦은 부상은 정수근의 플레이를 위축시켰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50.0개 도루를 기록하며 4년 연속 도루왕을 거머쥐었지만, 롯데에서는 3년간 그에 절반도 못 미치는 연평균 21.3개의 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몸이 나아져도 더 이상 예의 정수근이 아니었다.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1995년 OB에 입단한 정수근은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였다. 날카로운 스윙, 빠른 발, 폭넓은 외야수비 등 공수주 삼박자에 뛰어난 야구센스까지 갖춘 정수근은 이종범의 뒤를 잊은 대형 톱타자였다. 게다가 특유의 파이팅과 쇼맨십으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인기스타로도 성장했다.
그러나 롯데로 이적한 뒤에는 이상하리만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라운드 밖에서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렸고, 그라운드 안에서의 플레이는 일반 팬들이 보기에도 활기가 없었고 집중력도 결여돼 있었다. 몸은 그라운드에 있었지만 뜨거운 심장이 없었다.
▲ 외출과 귀가
올해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시작부터 ‘롯데의, 롯데에 의한, 롯데를 위한’ 잔치가 될 분위기였다.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에서 열렸고, 롯데 선수들이 6명이나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시구는 롯데 출신 올스타 MVP 5명이 맡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팬투표로 뽑힌 정수근도 있었다. 사실 올 시즌 성적만 놓고 본다면 정수근은 결코 올스타로 선정될 수 없었다. 58경기에서 타율 2할5푼3리·5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올스타전은 실력과 성적만이 절대가 아닌 유일한 무대다. 팬들은 아직 정수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정수근은 다시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다.
9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정수근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1안타가 바로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이었다. 1-2로 뒤진 7회 정민철로부터 비거리 105m 우월 홈런을 터뜨렸다. 맞는 순간 타구는 꽉 막힌 가슴을 뚫듯 라이너성으로 날아가 담장을 넘겼다.
정수근은 베이스를 돌며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세레머니를 취했다. 부산 관중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정수근의 얼굴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물론 정수근의 미소는 365일 운행하는 시내버스처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날만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과거처럼 그라운드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수근은 2004년 올스타전 MVP 수상 이후 야구장의 문을 열고 외출을 했다. 몸은 야구장에 있었지만, 열정이 온데간데없어졌다. 느슨한 훈련태도, 태업성 플레이, 안 좋은 소문이 쇠사슬처럼 정수근을 묶어버렸다. 그 사이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파릇파릇한 쌕쌕이일 것만 같은 그가 이제는 베테랑 소리를 듣는 선수가 된 것.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수근은 이제 겨우 서른이다. 야구선수로서 서른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나이다. 나이 서른의 선수가 하향세를 겪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수근은 생애 두 번째 올스타전 MVP 수상에 감격했다. 그리고 “야구를 더욱더 사랑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긴 외출을 마감하고 야구장으로 귀가할 때가 됐다. 다행히 이번 올스타 MVP 수상은 정수근이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악몽이 된 3년 전 후반기부터의 기억은 오래된 책장 속 책갈피처럼 뒤로하고 몸과 발 그리고 심장까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때다.
외출을 끝내고 귀가한 정수근의 후반기는 그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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