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결말’로 마감한 9개월 대장정
시트콤 장르-MBC 일일극 자존심 살려낸 ‘구원투수’
‘아듀, 야동순재, 꽈당민정, 주몽해미, 괴물준하…’
수많은 신조어와 인기 캐릭터들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지난 13일 방송을 끝으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거침없이 하이킥>은 방영 약 9개월간 모두 167편의 에피소드를 선보이며, 장르의 전형성을 넘나드는 거침없는 상상력과 실험적인 구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거침없이 하이킥> 마지막회에서는 그 동안의 이야기에서 1년이 지난 후, 김범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민호네 집에서 그간의 에피소드들을 추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를 돌발성을 자랑했던 <하이킥> 시리즈답게, 이야기의 마무리 역시 또 다른 미래를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마감했다. 할아버지 이순재는 아프리카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온 이후, ‘수면병’에 걸려서 잠만 자고, 이준하(정준하)는 무능력한 백수에서 탈피하며 성공한 가장으로 거듭난다. 민용, 민정, 신지, 윤호의 엇갈리던 사각관계는, 민용과 신지가 재결합하고 민정과 윤호가 재회하며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암시한다.
윤호의 친구 찬성은 댄스그룹을 만들어 아이돌 스타가 되고, 김범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자동차 폭발사고로 죽은 듯 했던 미스터리의 인물 강유미(박민영)는 최종회에서 다시 깜짝 출연하며 건재를 알리는 모습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은 방영초기만 하더라도 사실상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전통적으로 일일극이 배치되던 저녁 8시대에 몇 년째 KBS의 아성에 밀려온 데다가, 최근 ‘시트콤의 종말’이 거론할 만큼 장르의 인기 또한 하락세인 가운데, 방송가에서는 일일극 편성시간까지 변경하면서 가족시트콤이라는 한물간 장르를 투입했던 <하이킥>의 무모한 실험이 자충수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방영 초반 다소 황당한 이야기 전개와 상상력으로 대중들이 웃음의 코드를 짚어 내는데 시간이 걸렸던 <하이킥>은 점차 회를 거듭해가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상파 TV를 떠났던 1020세대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마니아팬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고, 진부한 대가족 이야기를 현대적의 감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며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이킥>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구축을 통한 ‘전 등장인물의 주인공화’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무너지는 가부장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할아버지, 무기력한 중년 가장, 당찬 며느리, 젊은 이혼남녀, 아웃사이더 등 우리 사회 한 켠에 존재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물들의 양면성을 포착해내는 새로운 시선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좌충우돌하는 시트콤 특유의 캐릭터 코미디에서, 대가족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룰 조명한 가족 이야기, 이혼남녀와 사제, 동성간의 사랑 등 이색적인 멜로 라인, 등장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 구조에 이르기까지. 시트콤의 전형성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퓨전 스타일’의 구성은 다양한 세대의 시청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시트콤의 대부’ 김병욱 PD는 2005년 조기종영의 아픔을 겪었던 SBS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한을 뒤로 한 채 말 그대로 ‘거침없이 하이킥’에 성공했다. 칠순의 나이에 ‘야동순재’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노장 이순재를 비롯하여, 나문희, 최민용, 신지, 서민정, 정준하, 박해미, 정일우, 박민영 등 신구 배우들이 모두 <하이킥>을 통하여 스타로 급부상했으며, 시청률 경쟁에서도 올해 2월을 기점으로 20% 고지를 돌파하며 MBC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이킥>은 사멸 일보직전까지 내몰렸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가족 시트콤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러나 이것이 <하이킥>만의 일회적인 성공이 될지 시트콤의 부활로 이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시트콤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고, 성공한 아이템에 대한 재탕 경향이 심한 국내 방송가에서, 앞으로 <하이킥>의 상상력을 능가할만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는 후속작들에게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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