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일밤>이 비판받는 이유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7.06.26 18:41  수정

정체성 상실한 <경제야 놀자>, <몰카> 선정적 구성 논란

시청률 눈멀어 변화 의지 상실한 제작진의 안이함

MBC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밤에>(이하 일밤)가 계속되는 시청자 비판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개그우먼 이영자의 ‘다이아몬드 반지 거짓 방송’ 파문으로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방송이라는 중징계를 받자마자, 이번엔 ‘연예인 고가품’ 과 ‘몰래카메라 선정성’ 논란으로 잇달아 빈축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일밤>은 MBC 예능국을 대표해온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8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무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스타들과 인기 코너들을 배출해내며 일요일 저녁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최근처럼 <일밤>에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며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진 것은 프로그램 방영 이래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도 방송 실수나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놓고 간간이 지적받은 경우는 있지만, 최근의 <일밤>은 그야말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단순히 우발적인 실수 차원을 넘어 프로그램의 정체성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서 문제가 크다.

현재 <일밤>은 ‘경제야 놀자’,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동안클럽’,등 3개의 코너로 구성돼있다. 이중 의학상식을 퀴즈 형식으로 풀어내는 ‘동안클럽’ 정도를 제외하면, ‘경제야 놀자’와 ‘몰카’는 선정적인 구성으로 잇달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본래 실용적인 재테크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경제야 놀자’는 최근 연예인들의 ‘고가품 자랑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4일 방송분에서 <경제야 놀자>는 가수 김종진과 배우 이승신 부부의 집을 방문, 역대 감정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전자기타를 비롯해 부부가 결혼식에서 입었던 고급 웨딩드레스와 캘리포니아산 와인 등 고가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경제야 놀자´에 대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초 ‘집에 오래 묵혀둔 물건의 가치를 재발굴해 숨은 돈을 찾아낸다’는 의도로 시작됐던 감정의 취지는 이제 연예인들의 화려한 저택을 구경하고, 얼마나 비싼 물건을 갖고 있는지 과시하는 무대로 변한지 오래다.

이미 가수 김종서와 서인영, 김장훈, 디자이너 장광효, VJ 찰스편 등에서 고급 자동차와 한국화, 이탈리아산 부츠,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고가의 물건들이 대거 등장한 바 있다.

이처럼 평범한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치스러운 생활과 높은 수익을 향유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할 뿐, 실용적인 경제정보나 재테크의 모델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판에 등 돌린 <일밤> ´자존심도 없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작위적인 설정과 예산 낭비, 연예인 인격모독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몰카’는 이번엔 ‘사채 보증’ 설정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4일 방송된 ‘이훈’ 편에서 몰카는 가짜 조폭들이 이훈을 상대로 사채에 보증을 서라고 강요하는 설정을 담아냈다. 가뜩이나 대부업 문제로 세간의 여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강요에 의해 빚보증을 서게 되는 모습을 마치 남자의 의리처럼 포장한 제작진의 행태에 시청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아이비, 이루, 유세윤, 김진표, 김제동, 원기준편 등에서 드러났듯, 돌발적인 상황에 자유롭게 대처하기 어려운 연예인의 특성을 악용해 망가진 모습을 강요하는 ‘몰카’의 수법은 이제 웃음보다 불쾌감만 선사한지 오래다. 공권력이나 조폭을 사칭해 연예인들을 위협하거나, 물을 끼얹고 막말에 폭언을 일삼는 등 거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밤>은 지난 1년 동안만 이미 수차례나 선정적인 내용으로 지적받고, 방송위원회로부터 몇 차례의 주의 권고와 징계를 받는 등 수난이 끊이질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거듭되는 외부의 비판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작진 스스로가 개선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밤>은 지난 20년간 주말을 대표하는 간판 프로그램으로서, 예능계에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일밤>은 빛바랜 상상력과 자정 능력의 부재를 드러내며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선정적 오락 프로그램의 전형일 뿐이다.

물론 재미있자고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너무 많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뭐든지 용납될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거짓말 방송파문과 고가품 논란 등이 벌어진 근본 원인도 일시적인 실수이기에 앞서, ´재미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제작진의 가벼운 문제인식이 빚어낸 예고된 인재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청자들이 제작진에게 기대하는 것은 거창한 요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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