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효린(21)의 첫 데뷔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두 달.
하지만 사람들은 훨씬 전부터 그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대중 앞에 서기 위한 ‘몸 풀기’ 의미로 경험한 모델 활동이 엄청난 성과를 가져온 것.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한 동안 그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랭킹 1위에 올랐고, 연예뉴스에도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데뷔 전부터 그녀는 이미 공인이 되어버린 상황.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한 쪽에서는 ‘억세게 운 좋은 신인’이라며 부러워했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조금 뜨는 것 같으니 가수까지 하네’라며 비꼬기도 했다. 게다가 워낙 동안의 얼굴을 갖고 있어 10대로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그저 예쁜 얼굴하나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남부럽지 않은 가창력을 지녔다는 것. 만약 예쁜 얼굴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면 안티팬만 수백만 명이 넘는 연예계 미운오리 새끼로 남았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명품코’에서 ‘가수’가 되기까지
민효린의 예쁜 코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슈가 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 반반한 어린 신인 중 한 명이겠거니’란 호기심 정도만 보였다. CF 모델로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곧 연기한다고 나서겠군’이란 추측들도 남발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민효린의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예상이 어긋나 마치 기분이 상한 듯 ‘아무나 가수한다’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방송 관계자들마저 ‘노래는 힘들 테니 춤으로 승부하려나’라며 미리부터 짐작, 별다른 기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란 듯 발라드곡을 들고 가요계에 데뷔한 민효린은 썩 괜찮은 라이브 실력을 발휘해 모두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민효린은 스스로 ‘잘 한다’고 말할 만큼 춤에 일가견이 있다. 연기부분에 있어서도 신인 연기자로 봐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꽤 오랫동안 연기를 배웠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은 가수였고, 가수라면 기본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아야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타이틀곡을 발라드로 정했다.
퍼포먼스로도 꽤 화려함을 드러낼 수 있는 댄스곡보다는 소리로 모든 느낌을 전달해야하는 조용한 곡으로, 음악팬들에게 먼저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주위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꿈을 향해 달려온 것이 조금씩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이제는 대중들이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듯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다가오고 있다.
“처음에는 많이 속상했어요. 성형설에 시달릴 때는 제 스스로 ‘정말 고치지 않았으니 상관없어’라고 다짐하며 잘 견뎠는데, 노래의 경우는 들어보시지도 않고 의심하시는 분들이 많아 좀 억울하더라고요. 모델로 먼저 활동한 것이 이처럼 무서운 편견을 낳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철저하게 노력을 기울여 볼 참이에요. 어쨌든 모자란 점이 있으니 지적을 받는 거잖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반전의 결과가 오리라 믿어요”
혹독한 데뷔 투쟁기, 이제부터가 시작
민효린은 일곱 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것이 마냥 좋을 나이였지만 그 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그 때부터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됐다. 초・중・고 시절 내내 교실 앞과 강당은 그녀에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되어줬다.
“가수가 꿈이었다는 증거는 제 방에 가득해요. 어린 시절 모아둔 음악프로그램 녹화 테이프가 산더미거든요. 지금도 제 보물 1호랍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어린 시절이 꽤나 범상치 않았을 거라고들 생각하시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장기자랑 때가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죠. 그 외에는 늘 얌전했어요. 아빠와 오빠가 너무 무서워서 혼날 것 같은 상황은 아예 만들지를 않았으니까”
민효린은 예쁘장하고 조금은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구수한 경상도 아가씨다.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모두 그 곳에서 보냈다. 보수적인 부모님의 뜻이 완고해 연예계 진출의 꿈은 몇 번이고 좌절될 뻔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이 만만치 않아 결국 부모님이 두 손 두발을 다 드셨다. 단, 환영이 아닌 마지못한 허락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노래를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어 좀 더 전문적인 기관이 필요했고, 오디션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야 했다. 하지만 집을 떠나는 것을 부모님이 허락해 줄 리가 만무했고, 결국 스무 살을 넘겨서야 통학을 조건으로 서울을 오가며 전문학원에서 노래를 배울 수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니 교통비에 식비까지 한 달에 백만 원 이상 소요되더라고요. 그래도 부모님은 절대 자취를 허락하지 않으셨고, 결국 8개월 이상을 그렇게 오고가며 지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을 만나 일을 시작하게 됐죠. 저희 부모님을 직접 만나 설득해주셨고, 결국 서울로 이사와 무사히 데뷔를 할 수 있었어요”
민효린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사실 계명대학교 연극영화과의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세상과 싸워보고 싶었고,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 대학은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는 자신감 정도는 그녀에게 충분히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부모님은 이미 만족해하세요.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게 보이시나 봐요. 가끔은 후회가 들 정도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제 꿈을 인정해주시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아니까 꼭 끝까지 잘 해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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