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100회 끝으로 1년여간 대장정 막내려
편향적 역사인식, 국수주의 사관, 미흡한 완성도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극본 이환경, 연출 이종한)이 지난 17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작년 7월 8일 첫 방송이 나간이래 100회로 대장정을 마감하기 까지,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전설적인 영웅 연개소문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삼국시대 말기와 중국 수-당 시대로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를 담아내며 안방극장의 ´고구려사´ 열풍에 한 축을 담당했다.
<연개소문>이 처음 제작되던 당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망언´ 파문 등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주몽>(MBC)의 돌풍으로 인해 안방극장에서는 ‘고구려 시대극’ 바람이 일었고, 민족 역사상 가장 자주적이고 화려한 시대를 자랑했던 고구려 영웅들의 무용담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연개소문>은 <주몽>만큼의 신드롬을 일으키는데 실패했다. 방영초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안시성 전투의 웅장한 스펙터클로 시선을 끌며, 한때 20%를 넘나들던 시청률은 막상 중반부를 넘어서며 10% 초반까지 추락했다. 막바지에는 주말 시간대 경쟁작이던 후발주자 <대조영>에게도 두 배 가까운 격차로 뒤지는 수모를 감수해야했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을 통하여 사극의 흥행보증수표로 불리는 이환경 작가, ‘군주 연기의 대가’로 꼽히는 중견 배우 유동근, 서인석 등의 합류는 SBS가 야심차게 400억 이상을 투자했던 엄청난 제작비 등을 감안할 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다.
<연개소문>은 왜 초반의 기대와 달리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많은 이들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치우친 역사인식, 제작비 부족과 촉박한 일정으로 인한 극적 완성도의 급격한 붕괴를 지적한다.
실존인물인 <연개소문>은 그동안 역사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은 반역자이자 무리한 대외 전쟁으로 고구려의 멸망을 재촉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적지 않았다. 드라마는 그동안 신라와 중국 중심의 사관에서 그려졌던 연개소문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한민족의 영광을 이끌었던 고구려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복권을 시도했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 과정에서 시대적 고증이나 국제정세에 대한 균형감각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연개소문과 고구려 중심적 입장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노출했다. 정통사극을 표방했음에도 주인공에 대한 동경과 미화가 지나쳐, 연개소문이 인간이라기보다는 거의 신선이나 초인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오류를 낳았다.
역사적 기록을 무시한 측면도 짚고 넘어갈 부분. 직접 참여한 적 없는 안시성 전투에 연개소문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젊은 시절 신라와 중국에서 활약했다는 황당한 설정을 전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고구려 멸망의 순간까지도 연개소문이 살아있었다는 ‘왜곡’에 가까운 내용을 여과 없이 방영했다.
<주몽>이나 <대조영>과 달리 역사적 상상력을 구체화시켜줄만한 극적 설득력이나 캐릭터의 부재는 <연개소문>을 판타지도 정통사극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올려놓고 말았다.
고구려 측 인물들은 하나같이 영웅적이고 명분와 대의를 갖춘 캐릭터로 묘사하면서, 중국(수-당)이나 신라 쪽 인물들은 대부분 속물적이거나 과장된 캐릭터로만 정형화 혹은 희화화시키는 극적 편향성, 또한 백제의 멸망 과정이나 수-당의 정권교체를 조명하는 <연개소문>의 역사인식은 지극히 단순하고 영웅주의적인 사관에만 치우쳐 시대적으로 오히려 더욱 퇴보한 느낌을 줬다.
권력암투->전쟁->권력암투->전쟁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사이클의 무한 반복, 국제 정세와 극중 상황을 내레이션도 모자라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하여 일일이 설명하는 집착은 극의 전개를 한없이 늘어뜨렸고, ‘극적’인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을 줬다. 유동근 등 이미 기존 사극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진 배우들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연기도 전작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요인.
드라마 외적으로도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방영이 길어지며 빡빡한 일정과 제작비 초과로 한계에 봉착한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허술한 완성도를 드러냈다. 당초 계획됐던 오픈세트장 완공이 지연되며, 한때 극중 배경 화면으로 사진을 입힌 합판이 등장하기도 하고, 연개소문의 ‘부메랑쇼’나 삼천궁녀의 ‘고공낙하쇼’ 등으로 명명된 어설픈 CG가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르며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지난해 11월 벌어진 스텝들 간의 ‘폭행 시비’, 올해 3월에는 보조출연자들의 출연료 미지급에 대한 항의시위로 촬영이 중단되는 등 크고 작은 어려움도 계속됐다.
<연개소문>의 한계는, 열악한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완성도 높은 대하사극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안방극장에서 보기 드문 대작, 그것도 잊혀지던 고구려 시대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촉박한 일정과 제작비 한계 속에서 충분한 사전준비와 노하우, 그리고 제작진의 성숙한 역사인식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결국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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