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대선기획>한나라당 ‘빅2’, 이것이 다르다<15>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가장 해드리고 싶은 일은?’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모두 마음속에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 산다. ‘못 다한 효도’에 대한 아쉬움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흉탄에 잃는 사건을 겪었다. 스스로 “누구보다 위기에 강철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진 않을 터다.
이 전 시장도 마찬가지. 모친은 이 전 시장이 고려대 재학 시절 6ㆍ3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반년 간 복역하다 석방된 1964년 겨울 작고했다.
이들에게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가장 해드리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못 다한 시간과 효도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베어났다.
“같이 산책하며 못 다한 얘길 나누고 싶다”=박 전 대표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경치 좋은 곳에 모시고 가서, 같이 산책하면서 못 다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답했다.
부모님과 ‘못 다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다.
박 전 대표에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짧았다. 1974년 8·15 광복절에 울린 총성은 박 전 대표와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서로 다른 세상으로 갈라놨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 박 전 대표가 퍼스트레이디로 옷을 갈아입은 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와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진 못했다. 1979년 10월 26일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됐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전방은 괜찮습니까”라고 물은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어머니께 새 옷을 사 드리고 싶다”=이 전 시장은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머니께 새 옷을 사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아버님은 내가 현대 회장일 때 돌아가셨기에 비교적 오랫동안 모실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는 평생 손발이 닳도록 일하셨지만 자기 집 한 칸, 새 옷 한 벌 가져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 내가 대학 4학년 때, 6.3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지 두 달이 채 지나지 못한 때였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고학하던 때라서 어머니께 옷 한 벌 해 드릴 여유가 없었던 나는, ‘나중에 취직하면 어머니 고운 옷 한 벌 해 드려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나중’은 없다는 걸”이라고 아쉬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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