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선두의 롯데 ‘올해는 다르다’
탄탄한 마운드+각성한 타선의 힘
롯데 자이언츠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삼성에 패한 후 길고 긴 겨울잠에 빠졌다.
2001년에는 시즌 중 ‘덕장’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2002년 부임한 백인천 감독은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와 팀 운용으로 지탄을 받았다. 관중들로 꽉 차 통로조차 찾기 어려웠던 사직구장은 한 관중이 자전거를 타고 활보할 정도로 텅텅 비었었다. 잔뜩 움츠러든 거인들은 전혀 거인답지 않았다.
악몽을 꾼 거인들은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6년간의 악몽이 그저 꿈으로 끝났으면 싶었지만, 냉정하게도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 거인들은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폈다.
롯데는 현대와의 원정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며 기분 좋게 시작을 시작했다. 롯데가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한 것은 1999년 이후 8년만의 일. 이제 겨우 5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개막 3연승에 힘입은 롯데는 4승1패를 거두며 순위표 맨 위에 올라있다. 물론 양상문 감독(현 LG 투수코치)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5년에도 프로야구판에는 거센 ‘롯데 돌풍’이 불었지만, 끝내 미풍이 되고 만 전력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조짐이 좋다. 우선 마운드가 매우 안정돼 있다. 팀 방어율 1위(1.80)가 바로 롯데다. 손민한-장원준-이상목-최향남-염종석으로 꾸려진 5인 선발 로테이션은 어느 팀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다. 개막 첫 5경기에서 롯데 선발진은 모두 5이닝 1자책을 기본으로 던졌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은 벌써 2승을 올렸다. 게다가 임경완과 박석진이 지키고 있는 허리나 호세 카브레라가 버티고 있는 뒷문도 안정됐다.
사실 마운드가 위세를 떨칠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스토브리그에서 롯데는 타선 보강에는 실패했지만, 마운드 강화에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5월께 가세할 송승준과 후반기 합류가 기대되는 이용훈도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마운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롯데의 고민은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로 명명되던 타선에 있었다. 타선 보강이 전무했고 별다른 상승효과도 보이지 않았다. 믿을 것이라고는 불확실한 타자들의 각성뿐이었고, 빈약한 타선은 올해도 롯데를 겨울잠에서 깨지 않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봄날의 거인을 깨운 것은 방망이다. 12일 현재,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팀 득점(29점)을 올리고 있는 롯데는 팀 타율(0.279)·장타율(0.412)·출루율(0.370) 모두 2위에 올라있다.
시범경기에서 팀 타율(0.256)·득점(46)·타점(44) 모두 1위를 차지하는 화력을 과시했지만 시즌에 돌입해서도 상승세를 이어갈 줄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수근·이승화·박현승·황성용 등으로 구성된 테이블 세터진은 8개 구단에서 두 번째로 높은 출루율(0.386)을 기록 중이다.
또한 이대호를 필두로 강민호·최경환·정보명 등이 차례로 이룬 클린업 트리오는 타율 0.285에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14타점을 합작했다. 득점권 타율은 0.333로 8개 구단 중에서 가장 좋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성적들이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없이 거둔 성적이라는 것. 호세는 일본 전지훈련 막바지에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2군에서 재활 중이다.
마운드가 안정된 롯데로서는 각성한 타선이 계속해 힘을 낸다면 올해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방망이가 믿을 것은 못되지만, 롯데의 방망이가 시범경기 때부터 달궈진 것을 감안하면 못 믿을 수준까지는 아니다.
물론 테이블 세터진과 클린업 트리오를 이루고 있는 이름이 매경기 다르다는 점은 불안요소라 할만하지만 호세가 가세한다면 지금보다 타순이 고착화될 것이고 그만큼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다.
롯데 팬들은 ‘가을에도 야구하자’고 외친다. 지금껏 수많은 슬로건들이 프로야구 그라운드 안팎에서 나돌았지만, ‘가을에도 야구하자’처럼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팬들의 염원까지 담겨진 슬로건은 없었다.
골수팬들이 가장 많기로 소문난 롯데의 거인들은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팬들의 외침에 겨울잠을 깨고 봄날을 맞이했다. 봄날의 햇살이 뜨겁고 정열적인 여름에도 계속되기 위해서는 더욱 달려야한다. 봄날은 언제나 빨리 가기 마련. 롯데가 봄날을 맞이하고 환호하는데 그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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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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