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문학구장에는 봄비가 내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는 거칠어졌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날은 ‘스포테인먼트’를 기치로 내건 SK 와이번스의 홈 개막전이었지만, 애석하게도 하늘은 비를 뿌렸다.
경기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빗줄기는 가늘어져 경기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잔칫집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관중도 당초 기대보다 떨어지는 약 1만 5천여 명이 구장을 찾았다. SK 구단은 예정대로 김성근 감독이 시구를 하고 이만수 수석코치가 그 공을 받으며 홈 개막전을 알렸지만, 좀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이는 김 감독 옆에서 마운드를 지키던 김광현(19)도 마찬가지였다.
▲ 무심한 하늘, 주인공을 외면하다
사실 이날 주인공은 김광현이 되어야했다. SK는 김광현을 제3선발로 낙점했지만, 홈 개막전을 위해 개막 3연전에서 아껴뒀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광현은 고향 인천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가질 것으로 기대됐다.
늘 변방에 머물렀던 SK도 올해 ‘스포테인먼트’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인기구단으로의 걸음을 떼고 있었고, 그 첫 카드로 김광현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심한 하늘은 비를 뿌리며, 날을 어둡게 만들었다. 어쩌면 SK와 김광현의 첫 출발의 어두운 징조였는지도 모른다.
김광현의 데뷔전은 야구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난 스토브리그 내내 김광현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해 녹색 그라운드를 지배한 ‘괴물’ 류현진(한화) 때문. 호사가들은 2005년 SK의 신인 지명을 놓고 류현진과 김광현의 첨예한 관계를 거론하며 둘을 라이벌로 만들었다.
그러나 류현진을 타깃으로 한 것은 김광현에게는 일종의 불운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교란 타인 입장에서는 더없이 흥미롭고 재미나지만, 당사자들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더욱이 김광현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 신인이다.
김광현은 올해 타선 부활을 부르짖고 있는 삼성을 맞아 4이닝 동안 홈런 하나 포함 8피안타 3실점을 기록했다. 총 투구수는 66개.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6.5개로 많은 편이었다. 3회까지 그런대로 버티던 김광현에게 4회는 마의 고비가 되고 말았다. ‘양신’ 양준혁에게 프로 데뷔 첫 홈런을 허용하더니 이후 2루타 2개 포함 연속 3안타를 맞으며 급격히 무너졌다. 결국 5회 SK 마운드에는 김광현 대신 사이드암 이영욱이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 아쉬움 그리고 기대
이날 김광현의 투구는 아쉬움과 기대를 한꺼번에 안겨줬다.
가장 큰 아쉬움은 생각보다 밋밋한 직구였다. 최고 구속이 142km밖에 되지 않았으며 평균 구속은 130km대 후반이었다. 종속이 떨어졌고 볼끝도 밸런스 탓인지 생각보다 무뎠다. 안산공고 시절, 김광현은 빠른 구속보다는 마치 3층에서 던지는 느낌을 주는 타점 높은 투구폼과 낙차 큰 커브 그리고 두둑한 배짱이 강점이었다.
그러나 프로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핀포인트 제구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직구의 스피드와 구위를 끌어올려야한다. 현재 직구로는 타자들에게 맞혀나가기 십상이며 직구 위력이 떨어지면 투구 패턴도 단조로워질 우려가 있다. 대투수로서 롱런하기 위한 필수요소 중 하나인 속도 가감을 통한 ‘오프스피드’ 피칭도 직구 구속이 살아나야 위력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도 적지 않았다. 먼저 신인답지 않은 변화구 구사능력이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커브를 비롯해 체인지업·슬라이더·스플리터(반포크볼)까지 맘껏 던졌다. 시범경기 때 지적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변화구 제구가 안정적이었다. 19타자밖에 상대하지 않았지만, 볼넷이 없었던 것은 고무적인 대목. 신인이 처음부터 이 정도 변화구를 구사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김성근 감독의 평가대로 경기운영능력도 돋보였다. 2회 1사 만루 위기에서 박정환에 체인지업을 뿌려 병살타를 유도해낸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양준혁에 홈런을 맞고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전반적인 마운드 운용은 안정적이었다는 평. 이 부분만큼은 능글맞은 류현진 못지않았다.
▲ 내일의 해는 반드시 뜬다
지난해 4월12일, 류현진은 잠실 LG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선발 등판을 가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류현진이 괴물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입단 계약금이 두 배나 많은 유원상을 제치고 한화의 신인 자격으로 미디어데이에 참석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신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프로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류현진은 7⅓이닝을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에 역대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10개) 타이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김광현도 류현진처럼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대형 유망주다. 그러나 류현진과는 등장부터가 달랐다. 류현진은 상대적으로 팬들의 기대도 적었고, 부담도 적었다. ‘못해도 본전’이라는 식의 가볍지만 자신감 넘치는 류현진식 태도는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광현은 다르다. 너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고 비교대상까지 생기면서 심적인 부담도 더해질 수밖에 없다. 류현진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어려운 법이다. 김광현이 프로무대라는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놀고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광현은 이제 막 출발선상에 선 전도유망한 선수다. 고교 시절에는 모교인 안상공고를 ‘광현공고’라고 불리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였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 지금 김광현은 프로에서 첫 발을 내디딘 루키다. 비록 첫 출발은 어둑어둑하고 추적추적한 날씨만큼 상쾌하지 못했지만, 비가 온 뒤에는 땅이 굳고 해가 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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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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