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찌푸린 그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라

김영기 객원기자

입력 2007.04.04 20:07  수정

내 인생의 하이킥을 위한 여유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제목대로 ‘거침없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연기자들은 각각의 색깔이 뚜렷하고, 그 색깔만큼이나 캐릭터로 소화해 낸 모습들도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에 탄탄하게 구성된 재미있는 사건들이 뭉치고 나면 <남자셋 여자셋>, <순풍 산부인과>를 잇는 저녁시간대의 ‘기다릴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저녁식탁을 물리고, 혹은 식사 때가 되어 TV와 밥그릇을 함께 끼고 앉은 시청자들. 매일 만날 수 있는 이 원장네 식구들의 사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하루 종일 받은 스트레스를 웃음에 담아 날려버린다.

시트콤은 시간이 갈수록 그 존재가치가 커져만 간다. 장르 자체가 가진 힘의 근원이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깊은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의식구조는 복잡한 업무영역외의 시간은 단순하고 즐거운 것들로 채우고 싶어 한다.

시트콤은 30분정도의 시간동안, 두 개의 스토리구조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신지가 서민정에게 끝없는 실수를 반복하며 못살게 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기 위해 준하가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펼친다는 식이다. 이는 과거에 성공했던 시리즈들이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작품들을 봐도 유사하다. 이야기에 힘이 없을 때, 작은 이야기 둘을 붙여 3개의 갈래를 갖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2개의 선을 넘지 않는다.

짧고 강렬하게 등장인물들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가지 사건에 많은 인물을 개입시키자니 나뭇가지가 너무 무성해지고, 자연스럽게 두 가지 사건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사건을 녹여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건보다도 시트콤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극임을 감안하면, 등장인물의 구조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한 가지 예로, 고유명사화 된<프랜즈>를 보면, 나이든 이들의 삶은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사람들의 사회입문부터 결혼, 출산 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경계를 떠나서, 시청자층이 바라보는 지극히 당연한 세상을 그리는 것이 시트콤이다.

우리가 보기에 지극히 당연한 어떤 것. 어른들과의 사고방식차이, 친구들 간의 유치한 다툼, 부부간의 작은 일에서 시작된 전쟁 등,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사건들은 내러티브적인 요소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다. 그 일상 속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모여 있다면, 그것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다.

이순재, 나문희, 박해미, 정준하 등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자세히 뜯어본다면, 그들이 주변에 존재하는 누구와 어떤 식으로든 닮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그 웃음의 포인트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피곤하고 짜증날 수 있는 인물들, 그래서 친구의 일이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그들과의 일상사가 그 스토리의 기반인 것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면, 우리 삶도 분명 그런 웃음의 포인트들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주위를 돌아보면, 분명 삶속의 이순재와 나문희, 박해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삶속의 그들은 분명 조금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피곤해질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인생을 즐기는 여유. 시트콤을 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여유는 그런 그들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는 마음가짐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하루 30분쯤, 내 인생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 하이킥을 날려보는 것. 인생의 여유를 찾는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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