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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왜 항상 ´침몰´?


입력 2006.12.26 23:49 수정         김영기 객원기자

블록버스터 ´못 만드는´ 일본영화의 한계

한 때, 일본문화 개방을 두고 벌벌 떨던 시절이 있었다. 개방과 동시에 밝혀질 수많은 카피본의 정체, 그리고 가요, 영화 등의 시장이 무차별 폭격을 맞지 않을까 해서였다. 지금은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때지만, 당시만 해도 문화계의 존폐를 가름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류라는 흐름은 홍콩에서 한국으로 문화의 중심을 옮겨왔다.

그에 반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일본의 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 <러브레터>처럼 훈훈한 사랑을 받는 작품들도 있다. 공포영화에 관한 한 독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돈 되는’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음양사>나 <일본침몰>등은 개봉과 동시에 말그대로 침몰했다.

이제 그들의 문화를 두고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위협한다는 식의 우려는 들려오지 않는다. 역사적 배경에서 오는 반감이 아닌, 수많은 작품들을 보고 내린 시장의 결론이다.

그들이 가진 어떤 ‘한계’는 앞으로도 한동안 뛰어넘기 힘든 스스로의 장벽처럼 보인다.



일본영화의 한계

1. 치밀하고 오밀조밀하다.


일본에서 만든 창작물의 가장 큰 특징은 치밀하다는 것이다. 작은 공연하나에도 시간이나 공간을 빈틈없이 치밀하게 준비하는 그들. TV에서 보는 그들의 도시나 마을처럼, 작고 치밀한 공간구성이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것은 그들 문화의 뿌리이다. 체구가 작고 대륙을 밟아보지 못한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다지 큰 것이 될 수 없었다. 지진이라는 요소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공간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는 폄하가 아닌 민족마다의 차이이다. ‘집과 마당’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미국인이 그리는 것과 한국인이 그리는 것, 그리고 일본인이 그리는 것은 분명 크기에서 차이가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에 나왔던 일본의 전경은 그래서 느낌이 다르다. 공간을 더 넓게 사용하고, 색감도 분명히 다르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탓이다.

기후와 공간적 제약, 그리고 작은 체구에서 오는 특성은 그들이 보는 공간을 작은 것으로 만들었다. 드라마들을 봐도, 그들의 드라마와 영상물이 그리는 방과 거실은 다른 나라의 것보다 작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그들이 익숙하게 보아온 환경이 반영되는 것이다.

2. 표현방식

그들의 표현방식과 문화의 뿌리는 만화이다. 원폭과 패전 후,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작능력도 떨어졌다.

이런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 만화였다. 자본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던 만화는 최고의 도구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원화가 사용될 프레임수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현재 방송에서는 1초에 30frame이 쓰인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입모양만 움직이고, 비행기는 가만히 있는데 구름만 스쳐지나가는 것은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다.

이런 만화에서 쓰이는 전개방식은 설명적일 수밖에 없다. 웃음의 코드 또한, 정지된 표정을 통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점은 다른 문화권에서 통용되기 힘든 면이다.

그래서 얼마 전 개봉했던 <일본침몰>은 개봉초기에 제법 주목을 받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겟돈>때와는 달리 입소문이 어떻게 나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영화계의 얼리 어답터들은 조용히 돌아섰고, 영화도 조용히 내려갔다.

3. 전체주의의 잔향

또 한 가지.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전체주의적인 냄새가 남아있다. 개인보다는 단체가 우선이고, 그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긍지와 자부심이 중요하다. 개인과 실리가 더 중요한 것이 되어가는 현 시대에 이런 사고방식 또한 다른 문화권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다.

4.여성에 대한 묘사

OL이라는 단어가 있다. Office lady, 사무실 여직원이라는 의미이다. 역할이나 분담된 업무도 없이 그저 ‘사무실의 여자’라는 개념. 그들의 저작물에서 묘사되는 여성은 절대 주체적 존재가 될 수 없다.

문화는 책한 권으로 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당 문화권 사람들의 행동 하나, 사용하는 단어 하나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사무라이와 같은 남성이 결국 모든 것을 해내고, 이를 옆에서 조신하게 무릎 꿇고 돕는.. ´예쁘고 백치미 느껴지는´ 여성의 구조는 이제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 더 다양해야하고, 더 새로워야하는 요즘. 그들이 가진 이런 사고의 굴레는 절대 섬 밖으로 그들을 나갈 수 없게 할 것이다.


문화계의 한일전

일부 마니아층이 열광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마니아층이 있기는 하지만, 그저 색다른 무엇인가를 맛보는 식에 머문다. 전체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의 수도 전체 영화팬 규모에 비추어, 대단한 수준이 아니다.

과거 문화개방 이전, 일본문화에 열광했던 이유는 작품성보다는 희소성이었다. 남이 못 본 것을 보고 향유하는 재미는 이것저것 따져보기보다는 일단 스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원하는 것은 인터넷에 모두 있다. 정책적으로 열렸든 아니든, 원하는 것은 다운로드 받아 얼마든 즐길 수 있다. 케이블에는 일본 전문 채널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한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보편적이지 못한 상상력의 한계와 위에 언급한 요소들 탓일 것이다.

그들이 그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전반적 인프라는 뛰어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일본시장은 거대하다. 헐리웃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고, 애니메이션의 시장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영화의 역사나 제작자들의 능력도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글로벌 시대의 생산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독보적으로 나섰으면서도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우리의 문화적 저력은 무서울 정도이다. 항상 100%의 속도로 나가지 않더라도, 끊임없는 성장을 확신하는 이들이 많다. 그것이 자만으로 빠지지 않는 한, 문화계의 한일전에서 우리는 항상 승자일 것이다.

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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