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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입력 2006.04.29 10:49 수정        

- 초콜릿의 나이는 2800살이다.-

- 초콜릿이 주는 평화를 만나보자.-


발렌타인데이도 아닌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는 5월의 초입에서 생뚱맞게도 때 아닌 초콜릿이야기인가.

독자들께서 의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초콜릿의 숨은 얼굴엔 눈물겨운 식민지의 아픔이 심어져있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시비 거리도 먼 옛날의 제국주의 망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들만의 당치도 않은 욕심이 들러붙어있는 것처럼, 힘이 있어서 약소국을 침범하고 약탈했던 머나먼 항해의 시대. 신대륙에 대한 열망이 가득찼던 그 시대에 초콜릿도 약탈의 문화 한 상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초콜릿 이야기에 일본의 노망난 생각까지 비약이 심할지 모르지만 지구 인류문명의 커다란 맥이었던 마야문명이 어떻게 사라져 버렸는가.

바로 야만인 같았던 스페인의 총칼과 끝없는 탐욕에 오로지 신을 받들고 평화롭게만 살던 잉카. 마야가 유린되다 못해 멸망해 버리고 말았잖은가.

도미니카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 도미니카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

그러므로 초콜릿을 통해서 본 아메리카와 유럽의 문화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정복과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 신세계는 유럽에 어마어마한 식물들을 전해주었다.

감자, 토마토, 고추, 등과 같은 새로운 작물들이나 향신료가 바로 그것들이다.

초콜릿 역시 옥수수 담배와 더불어 유럽인들이 생전 처음 보는 작물 가운데 하나였다. 초콜릿의 원주인인 인디오들이 유럽인들에 의한 강제노동과 그들이 가지고 온 질병으로 멸망해가는 동안 초콜릿은 바다 건너 유럽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사랑을 받은 아이러니컬한 역사를 만들었다..


카카오 콩을 원료로 한 과자 또는 음료의 형태를 말하는 초콜릿(Chocolate)은 멕시코 원주민이 카카오 콩으로 만든 음료를 초콜라틀(Chocolatl) 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코코아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강 유역으로 일컬어진다. 멕시코 원주민은 카카오나무의 열매 카카오 콩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부르면서 음료나 약용으로(피로회복 음료, 강장 영양제등) 썼으며, 나아가 화폐로까지 (카카오 10알로 토끼 한 마리를, 1백 알로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가치)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열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열매

아즈텍에서는 유럽에 카카오가 소개되기 오래 전부터 카카오를 재배하였으며 왕실에서는 카카오를 볶아 여기에 옥수수, 물, 향신료를 첨가하여 초콜릿을 규칙적으로 먹었으며 결혼 예식이나 기타 신성한 예식을 올릴 때에도 음용하였다.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가 영양이 많고 최음 효과가 있다고 믿었는데 아즈텍 왕 몬테수마는 여인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여러 잔의 코코아를 마셨고,

스페인 상류층에서는 성적인 흥분을 높이는 최음제 역할로 쓰였다. 심지어 사드 후작은 칸타리스(악취와 톡 쏘는 맛이 있고, 피부에 닿으면 붉게 발포하여 피부 자극제로 쓰이는 물질)를 넣은 초콜릿 드롭스로 젊은 여인들을 중독 시켰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사랑의 묘약으로 그려진 영화 ´초콜릿´의 포스터 사랑의 묘약으로 그려진 영화 ´초콜릿´의 포스터

때문에 성직자들은 욕망을 일으키는 초콜릿을 먹는 것이 단식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놓고 250년이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초콜릿은 2800여 년 동안 부유한 왕족, 귀족, 기사 같은 특권층만 먹는 신분의 상징이 되었지만 요즘엔 각종의 초콜릿이 범람하고 상품화된 것이 실증이나 스스로 만들어서 먹거나 선물하는 풍조가 되었으니 문명을 파괴시키며 세계로 전파된 초콜릿의 몸값도 많이 대중화가 되었나 보다.

어쨌거나 오늘날의 초콜릿 형태가 되기까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5세기 말에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로 4번째 항해를 하던 중 유카탄반도 연안의 카카오 빈을 포함한 농산물을 가지고 돌아간 것이 그 시초인데,

그 후 16세기 중반에 멕시코를 탐험한 스페인의 웨루디난도 코르테스가 음용으로서 스페인의 귀족이나 부유층에 비로소 소개하여 17세기 중반에는 유럽 전토에 퍼지게 되었다.

1679년 초콜릿파우더가 선보인 이후 1828년에 네덜란드인 반 호텐은 카카오를 압착하여 지방을 추출 코코아 버터를 만들었고 이 제조 기술은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그 후 코코아버터 지방의 성질을 이용하여 성형판을 사용. 크림에 초콜릿 입힘이 가능하게 되었고 훨씬 뒤인 1876년 스위스의 Daniel Peters에 의해 오늘날의 밀크 초콜릿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커버링 초코는 1976년 린트에 의해 제조돼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1976년에는 스위스인 D. 피터가 밀크를 첨가하는 데 성공하여 현재의 밀크 초콜릿 산업의 문을 열어 놓았다. 편견 같지만 지금도 린트 초콜릿만큼 맛있는 초콜릿은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명성왕후 영정 부분확대. 명성왕후 영정 부분확대.

우리나라의 경우 초콜릿을 가장 먼저 먹어본 사람은 아마 구한말의 명성황후일 것이다.

당시 러시아 공사 부인이 규방 외교의 일환으로 양화장품과 양과자를 명성황후에게 갖다 바쳤다는데, 그중에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간교한 이토 히로부미가 왕궁을 드나들 때마다 임금을 에워싼 상궁들을 회유하려고 초콜릿을 비롯하여 양과자를 선물했다는데 이것이 처음이라는 설도 있다.

1968년 동양제과 및 해태제과에서 초콜릿을 시작했고 롯데제과는 1975년 여러 제품 등으로 참여해 현재 수위를 점하고 있다. 1980년 쉘 라인을 가동하고 1982년엔 아몬드제품을 선보였으며, 1983년엔 국내 처음으로 과자를 이용해 빼빼로를 생산 하게 되었다.

특유의 성분은 테오브로민으로서 카페인과 비슷한 흥분성의 알칼로이드이지만 차나 커피만큼 강하지 않으므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도 적당한 식품이다.

비교적 열량이 높아서 등산할 때 비상식량으로 많이 가져가고 군대에서도 간식거리로 자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하는데 열량뿐만 아니라 특유의 카페인 성분 때문에 육체의 피로감을 쉬 느끼게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의 유럽 전쟁역사 속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던 초콜릿. 싫든 좋든 고향을 떠나서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린 사랑스런 음식문화이자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한 초콜릿.

형형색색 맛있는 초콜릿 자료사진 형형색색 맛있는 초콜릿 자료사진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예쁜 초콜릿 한 조각 건네 보자. 다툼이 있었던 친구에게, 정치나 행정의 소란함 속에서 평화를 얻고 싶을 때도 은밀한 즐거움의 초콜릿을 먹어보자. 마음이 릴랙스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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