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계약기간 등 그 어느 것도 감독의 지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올 시즌 후 누가 남고 누가 떠날지 주목된다.
프로야구 감독의 운명이란 전장에 출전하는 장수와 같다.
승리하면 모든 영광과 찬사를 한 몸에 받지만, 실패하면 비난과 책임도 홀로 감수해야하는 자리다.
올해 8개 구단 사령탑들의 면면은 큰 폭으로 바뀌었다. 김성근(고양), 김경문(NC), 조범현(전 KIA) 등 베테랑급 감독들이 대거 프로 1군 무대에서 물러난 반면 새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온전히 감독경력만 놓고 보면 올해 KIA에서 지휘봉을 잡은 7년차 선동열 감독이 ‘최고참’일 정도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장수 감독’은 보기 어려워졌다.
한 팀에서 3년 이상 지휘봉을 잡고 있는 감독은 넥센 김시진 감독, 한화 한대화 감독 정도에 불과하며 삼성 류중일 감독과 롯데 양승호 감독은 2년차다. SK 이만수 감독, LG 김기태 감독, 두산 김진욱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지난해 프로야구는 초보감독 열풍이 불었다. 류중일 감독은 데뷔 첫해 팀을 한국시리즈와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고, 양승호 감독도 롯데를 창단 이후 정규시즌 최고성적인 2위로 끌어 올렸다. 시즌 중반 팀을 맡은 이만수 감독은 SK를 5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면서 대행 꼬리표를 떼어냈다.
하지만 초보 감독들은 모두 적지 않은 시행착오에 시달렸다. 양승호 감독은 시즌 초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하위권에 추락했을 때는 ‘양승호구’라는 굴욕적인 닉네임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만수 감독도 전임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시달리며 안티 팬들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올해는 전임 감독들의 그림자를 넘어 자신만의 야구색깔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올해 데뷔하는 초보감독들은 어떨까.
김기태 LG 감독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이적으로 홍역을 앓았고, 개막 전에는 박현준, 김성현 등 마운드 핵심들이 경기조작 파문에 연루되는 악재도 있었다. 두산은 김진욱 감독과 일본프로야구에서 감독을 역임한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의 선임으로 ‘초보 감독-감독급 코치’의 이색적 조합이 눈길을 끈다.
한화 한대화 감독과 김시진 넥센 감독은 올 시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처지다. 그동안 허약한 팀 전력상 리빌딩 과정이라는 면죄부를 얻었지만 대대적인 전력보강이 이뤄진 올해는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성적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해태 왕조의 영광 재현을 표방하며 KIA에 돌아온 프랜차이즈스타 출신 선동열 감독의 귀환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감독의 운명은 언제나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다. 성적을 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성적이 좋더라도 여러 이유로 리더십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김성근 감독은 SK를 4년 동안 3번이나 우승시키고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선동열 감독은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고도 계약기간을 4년이나 내려놓은 상황에서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야했다. 조범현 감독도 2009년 우승을 차지한지 2년 만에 물러나야했다.
성적, 계약기간 등 그 어느 것도 감독의 지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올해 8개 구단 감독들은 올 시즌 이런 잔혹한 생존 경쟁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가도 700만 관중을 끌어모을 프로야구의 관전 포인트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