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안가리고 포스트이명박 고민?

입력 2009.06.02 16:36  수정

쇄신특위 끝짱토론 강경 발언…친이직계도 "인적쇄신" 요구

"민심이반 오만과 독선 심판"…"박근혜 전면 나서야" 의견도

한나라당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과 위원들이 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쇄신특위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위원장 원희룡)가 당·정·청 쇄신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냉소적 태도에 막혀 목표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쇄신특위는 2일 오전부터 끝장토론을 벌였다. 위원들의 발언에 시간제한도 두지 않았다. 당내 계파갈등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 청와대 참모들의 문제점 그리고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폭풍까지, 한나라당의 탈출구가 무엇인지 집중 논의했다.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은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하다”며 현 시국이 여당에게 엄중한 위기국면임을 강조했다.

쇄신안의 가닥은 대체로 잡혔다. 박희태 대표의 퇴진을 위시한 당 지도부 사퇴 및 조기 전당대회 개최 그리고 내각과 청와대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민심수습책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담화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쇄신안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인다.

박희태 대표는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고, 청와대 역시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요구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해 이 대통령이 사과를 하라는 것인데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개편 역시 때가 되면 할 일”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당 내 소장파 의원들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친이’ 직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와 내각의 대대적인 인적 개편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두언, 정태근, 김용태, 권택기, 조문환 의원 등 ‘친이’ 직계 4명과 차명진, 임해규 의원 등 ‘친이계’ 의원 2명은 쇄신특위와는 별도로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쇄신과 관련해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작금의 민심이반은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전부가 아니다”며 “국민은 힘들고 어려운데 한나라당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은 여전히 혼자 앞장섰다. 지금도 나를 따르라라고만 외친다. 바로 그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라고 이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 수뇌부를 강력 비판했다.

또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라며 “작년의 촛불 때와는 다르다. 1년 반이면 책임져야 할 충분한 시간”이라고 조기 전당대회 개최와 청와대·내각의 전면적인 인적쇄신과 대대적인 국정기조와 국정시스템 개편을 촉구했다.

이들 6인은 “현 체제로는 내부에 팽배된 패배주의를 물리칠 수도 연이어 다가오는 그 어떤 심판도 이겨낼 수 없다”며 “손바닥으로 진실의 하늘을 가리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한나라당과 정부의 대쇄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주장했다.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차명진, 권택기, 김용태, 정태근, 임해규, 조문환 의원(좌측부터) 등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의 민심이반에 대한 책임론과 인적쇄신 그리고 조기전대 등을 요구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을 바라보는 여권 수뇌부와 당내 소장파의 시각차가 판이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내 한 관계자는 “소장파 등 쇄신위가 밀어붙이고 지도부·청와대가 격돌하는 형국이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느냐”며 “박희태 대표가 모른 척 사퇴해주는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는 “당 분위기도 전환시킬 겸 전당대회까지는 갈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되면 ‘친이’ ‘친박’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 당이 더 큰 내홍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주류가 선뜻 받아들이기 곤란한 이유”라고 말했다.

만일 전당대회 개최된다면 누가 출전하고 또 어느 계파가 지도부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당장악력도 판가름 나겠지만 누가 되더라도 이 대통령에게는 현 체제보다 좋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지금보다 더 뚜렷한 당·정 분리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이’ 직계인 정태근 의원은 “지금 당내에선 어차피 10월 재보선은 해보나마나라는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며 “중요한 것은 국민 신뢰를 우선 회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당대회를 하면 계파갈등이 심해질 것이란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당내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지금 이미 MB정부는 사실상 식물상태”라며 “이제부터 대안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반에는 ‘쇠고기 촛불’로 그리고 지금은 ‘노무현 서거’로 두 가지를 연장으로 맞은 상태”라며 “남북관계도 지금 매우 심각하다.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라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좋아진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향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더 커질 것이고 그래서 이제부터 ‘포스트 이명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의 한나라당 쇄신논의가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반(反)MB 반(反)한나라당 정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여론조사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보수·영남을 기반으로 한 30%대의 탄탄한 지지율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사태 이후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대 중·후반에 머물던 민주당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치솟으며 한나라당을 앞질렀다.

이러한 지지율 추세가 계속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한나라당에서 빠진 지지율이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여당 관계자는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박근혜는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다르다고 느끼는 측면이 많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따라서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 민주당’의 구도가 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라는 게 여권의 솔직한 전망이다.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온 ‘친이계’ 의원들 역시 체면 불구하고 지난 2004년 탄핵정국에서 침몰하는 한나라당을 부활시킨 ‘박근혜 파워’를 기대하는 눈치다.

쇄신특위는 4일 열리는 당 의원연찬회에서 예의 쇄신책을 내놓고 지도부를 압박할 작정이다. 한바탕 격돌이 예상된다. 영남 의원들 보다는 지지율에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이 쇄신안 관철을 대거 밀어붙일 태세다.[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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