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본선 진검승부만이 남아있다. 쾌조의 연승행진으로 평가전 일정을 마감한 축구대표팀이지만, 아쉬움은 최대의 변수라 할만한 ‘박주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마지막 숙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31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호주 올림픽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박주영은 이 경기에서 신영록과 투톱으로 짝을 이뤄 풀타임 활약하며 지난 27일 코트디부아르전에 이어 또 한 번 인상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활발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슈팅 및 패스에 이르기까지 한국대표팀의 공격 리더로서 박주영의 경기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골은 터지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공격수 중에서 골맛을 보지 못한 것은 박주영이 유일하다. 박주영은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첫 소집이었던 2006년 11월 일본전 이후 2년 째 무득점에 그치고 있으며,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무득점에 그쳤다. 성인대표팀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 6경기에 모두 나섰으나 필드골 없이 동료들의 도움으로 얻어낸 PK 2골이 전부였다.
골만 빼고 다 잘하는 공격수 vs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개그맨?
물론 골보다는 팀 승리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박주영이 지금도 같은 연령대의 대한민국 공격수중 최고의 기량과 경험을 두루 갖춘 선수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최근의 활약에서도 ‘오로지 골만 못 넣었을 뿐’ 플레이 자체는 훌륭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공격수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골 결정력이다. 공격수에게 골만 빼고 다 잘한다는 찬사는 개그맨 더러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2년 넘게 대표팀에서 확실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선수를 올림픽팀 간판 공격수로 끝까지 믿고 맡기는 것을 두고 과연 ‘신뢰인지, 도박인지’ 우려의 시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주영 딜레마’는 그가 올림픽팀에서 차지하는 전술적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데서 초래한다. 이근호나 신영록같은 선수들이 최근 평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결국 올림픽팀의 에이스는 역시 박주영이다. 누가 골을 넣었건 간에 최근 대표팀의 평가전은, 엄밀히 말해 공격라인의 주전 경쟁이 아니라 박주영 중심의 공격전술과 조직력을 가다듬는데 목적이 있었던 경기다.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박성화 감독이 자처한 것이기도 하다. 2005년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박성화호는 곧 ‘박주영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성화 감독은 공간 활용 능력이 뛰어나고 탁월한 축구센스를 갖춘 박주영을 중심으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전술을 구축했고 이것은 아시아 무대에서는 지금까지 그런대로 잘 통했다.
그러나 한 선수의 개인능력과 컨디션에 따라 팀의 분위기와 전력까지 좌지우지되는 것은, 세계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2005년 U-20 대회 본선이 좋은 예다. 박주영은 나이지리아전에서 프리킥 골을 넣으며 2-1 역전승의 수훈감이 되기도 했지만, 본선 내내 전체적으로 지역예선만큼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팀도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감수해야했다.
전임 베어벡 감독은 그간의 국내 감독들과는 달리, 팀이 박주영의 원맨팀이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역대 대표팀 감독중 박주영에게 가장 혹독한 평가를 내린 것도 베어벡이었고, 그가 지휘봉을 잡았던 2차 예선 동안에는 아예 박주영을 제외하고도 올림픽팀은 승승장구했다.
베어벡이 물러나고 박성화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박주영은 자연스럽게 올림픽팀의 전술적 핵심으로 복귀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 박성화호에서 박주영의 위치는 2005년 청소년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호주전에서도 박주영은 전반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지만,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 전반과는 판이하게 움직임이 둔해졌고, 그만큼 한국의 공격도 활기가 떨어졌다.
‘골은 잘 넣어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선수’가 있고, 본인이 ‘골은 못 넣더라도 팀을 이기게 만드는 선수’가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 모두를 갖추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적어도 후자가 되어야한다. 박주영은 과연 어느 쪽이 될 것인가, 올림픽팀의 운명도 여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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