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는 표현 뒤에는 아직 어린 선수 개인에게 한국축구을 끌어올릴 구원의 메시아 역할을 강요하는 과도한 판타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언제쯤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축구천재’로 칭송받았던 박주영(23·FC서울)이 오랜 슬럼프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처럼 큰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컨디션이나 움직임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공격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다. 골가뭄에 신음하고 있는 대표팀에 있어서도 간판 공격수인 박주영의 부활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박주영은 현재 올림픽팀과 성인대표팀을 막론하고, 의심할 나위없는 한국축구의 주전 스트라이커다. 허정무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지난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 6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그중 5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그러나 필드골 없이 PK로만 2득점에 그쳤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주전으로 나섰지만 득점 없이 도움 1개에 그쳤다. 올림픽과 성인대표팀 모두 공격의 최선봉에 있었던 박주영에게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돌아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심지어 최근에는 21일 최종엔트리(18명)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 올림픽대표팀에서 과연 이름값만으로 그를 선발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올림픽 대표선수들은 주말 K리그를 통해 마지막 수능을 치른다. 그러나 박주영이 엔트리에서 탈락할 확률은 희박하다. 박주영과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 호흡을 맞췄던 박성화 감독의 신뢰가 여전히 변함이 없는 데다 최종엔트리 선발에서 “모험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공격수 와일드카드가 없는 이번 올림픽팀에서 이미 각급 대표팀을 두루 섭렵한 박주영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검증된 공격수는 없다. 올림픽팀의 공격루트 자체가 전술적으로 박주영의 개인능력에 많이 의존하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골결정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박주영의 슬럼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올림픽 본선무대에서도 부진을 거듭할 경우, 한국의 조별리그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박주영 본인에게도 슬럼프의 심각한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박주영을 지도한 감독들의 평가에서도 보듯, 최근 박주영의 부진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면에 영향이 크다는 것이 중론. K리그에서 골대를 여러 차례 맞추는 등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계속되면서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경향이 없지 않다. 골결정력이 떨어지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플레이스타일의 단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로 23세인 박주영에게 이번 한 해는 축구인생의 ‘성장과 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분기점인지도 모른다. 한때 유망했지만 결국은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을 것인지, 일시적인 시련을 극복하고 여기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기회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축구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던 것이 장기적으로 박주영의 커리어에는 독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천재’라는 표현 뒤에는 아직 어린 선수 개인에게 한국축구을 끌어올릴 구원의 메시아 역할을 강요하는 과도한 판타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도 사실.
황선홍, 최용수, 안정환, 이동국 등 한때 ‘천재’로 칭송받았던 역대 선배 스트라이커들도 박주영도 마찬가지로 이른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급부상했으나 이후 과도한 유명세와 부상 등으로 한번쯤 시련을 겪으며 변화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어쩌면 박주영은 지금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던 레벨을 넘어 빅주영은 현재의 한국축구를 이끌어 가야하는 중심적 위치에 놓여있다.
많은 유망주들이 이 단계를 넘지 못하고 슈퍼스타와 평범한 선수의 갈림길 사이에서 좌절했다. 대중의 높은 기대와 관심을 모으는 스타로서 박주영에게는 그 성장통은 조금은 더 가혹하게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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