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숙제가 너무 많다’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8.06.16 13:56  수정
허정무호의 실점 대부분이 후반 중반 이후 나왔으며,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한 경우가 9경기 중 무려 5차례나 있었다. 단적으로 경기운영과 완급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허정무호가 천신만고 끝에 3차예선을 통과했다.

‘죽음의 4연전’에서 최대고비였던 원정 2연전을 승리로 이끌며 마지막 북한전 결과와 관계없이 최종예선 진출을 마무리 짓기는 했지만, 정작 여론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아무리 아시아축구도 상향평준화됐다지만,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등 한수 아래 팀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고전해야하느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벌써부터 사우디·일본 등 라이벌과 만나는 최종예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팀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근본적으로 허정무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됐다. 아시안컵 직후 사임한 핌 베어벡(호주 대표팀) 감독의 뒤를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지휘봉을 잡은 허 감독은 ‘태극호의 선장’으로서 자질을 두고 8년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3차예선에서 드러난 허정무호의 문제점은?

허 감독은 취임직후 A매치 9경기에서 4승 4무 1패를 기록했다. 패배는 첫 경기였던 1월 30일 칠레전(0-1)이 유일하다. 그러나 칠레를 제외하면 그동안 허정무호가 상대했던 팀들이 대부분 아시아에서도 ‘2류급’의 약체팀이었다는 점에서 내용상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

지난 6개월간 드러난 허정무호의 문제점은 △확실한 중앙 수비자원의 부재 △단조로운 득점루트와 빈약한 골결정력 △해외파 선수들의 난조 등으로 꼽힌다. 또한 이 세 가지 문제는 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돼있다.

허정무호는 9경기에서 15득점, 8실점을 기록했다. 이중 득점은 최약체인 투르크멘과의 2경기에서 절반에 가까운 7골을 몰아넣은 것을 빼면, 나머지 7경기에서는 8골로 경기당 1골을 겨우 넘는 수준에 그쳤다.

베어벡 시절부터 지적됐던 확실한 득점원의 부재는 허정무호에서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4-2-3-1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주로 원톱을 자주 쓰는 허정무호에서는 현재 박주영을 제외하고 제공권과 몸싸움에 능한 원톱형 중앙공격수가 전무한 상황이다. 원톱보다는 처진 스트라이커에 더 최적화된 박주영은 3차예선에서 2골을 넣었지만 모두 PK골이었고, 이를 제외하고 스트라이커가 넣은 득점은 아예 없다.

조재진, 서동현, 신영록 등 K리그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공격수들은 부상과 슬럼프 등을 이유로 이번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고기구와 안정환 등이 허정무호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 모두 사실상 선발이라기보다는 ‘조커’에 가깝다.

득점의 부진은 단순히 공격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측면공격이 주요 득점루트였던 한국축구는 허정무호 출범이후 측면공격을 통한 득점생산이 거의 사라졌다.

박지성과 설기현 등 해외파들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가운데 요르단전에서 발굴한 새 얼굴 이청용은 부상으로 이후 경기에서 크게 공헌하지 못했다. 이천수와 최성국은 지난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고 있으며 염기훈도 부상 중이다. 한국축구의 장기가 측면공격이라는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선수들의 기량도 예전만 못하다. 최근 대표팀에서 상대 수비수 한 두명을 여유 있게 제치거나 달리면서도 문전으로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던 장면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국축구의 장기이던 측면의 위력이 반감되며 원톱 공격수들도 자연히 수비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모습이 잦아졌다.


시행착오 거듭하고 있는 한국축구, 원인은?

수비도 마찬가지다. 허정무호 출범 이후 대량실점은 없었으나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을 상대로 후반 역습 상황에서 한 번의 공격으로 수비가 무너지고 실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허정무호의 실점 대부분이 후반 중반 이후 나왔으며,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한 경우가 9경기 중 무려 5차례나 있었다. 단적으로 경기운영과 완급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것.

베어벡 감독이 이끌던 지난 아시안컵 대회 당시에도, 한국은 6경기 3골에 그친 빈약한 골결정력과 단조로운 전술운영으로 많은 지적을 받았지만, 수비 조직력에서만큼은 완벽한 모습을 자랑했다.

이란, 일본, 사우디 같은 아시아 강팀들을 상대로 한골도 내주지 않은 철벽 수비는, 한국축구의 숙원이던 포백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허정무호에 접어들며 한국축구의 수비조직력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한 센터백 콤비의 부재다. 허정무호 출범이후 김진규는 석연치 않게 대표팀에서 밀려났고, 곽태휘, 이정수, 곽희주, 강민수, 조용형 등 다양한 조합이 테스트됐지만, 누구도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인방어와 제공권 장악 등 수비수들의 개인능력 부족도 문제지만, 홍명보나 김태영처럼 팀이 어려울 때 수비진을 능숙하게 조율해줄만한 정신적 리더가 없다는 것도 아쉬움이다. 허 감독도 다른 포지션에 비하여 중앙수비자원에서 쓸 만한 자원이 부족하다고 우려의 시선을 표시할 정도다.

허정무호의 ‘믿을맨’인 해외파들은 최근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박지성과 김동진은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서 거의 공헌하지 못했고, 이영표나 설기현은 소속팀에서 주전경쟁에 밀려나며 경기감각의 저하가 두드러진다.

이번 대표팀에서 그나마 제몫을 해낸 해외파는 김남일, 오범석, 김두현 정도. 최종예선까지 해외파 선수들의 기량은 어떻게든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허정무호의 앞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허정무, 제2의 본프레레 되어선 안돼!

대표팀은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후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돌입해 지금쯤 어느 정도 새로운 팀컬러의 방향과 틀이 잡혀있어야 했다. 그러나 베어벡 감독이 1년 만에 어정쩡하게 중도하차하며 대표팀의 세대교체는 그야말로 용두사미가 되어버렸고, 축구협회의 늑장대응으로 후임 감독선임도 늦어지며 결국 뒤늦게 허정무가 모든 부담을 짊어진 채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허 감독의 모습은 현재 2005년 당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본프레레 감독은 당시 ‘몰디브 쇼크’로 하차한 쿠엘류 감독의 뒤를 이어 단시간에 팀을 재정비해 한국을 독일월드컵 본선에 올려놓는 수훈을 세웠지만, 잦은 말 바꾸기와 전술 부재 등으로 재임기간 내내 끊임없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은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짓고도 사실상 경질되는 수모를 맛봐야했다.

허 감독에게 가장 부족한 것도 역시 시간이다. 허 감독의 지도력에 대해 말이 많지만, 그가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4연전 이전까지 대표팀 정예멤버들을 소집하여 충분히 손발을 맞출 시간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대표팀 운영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표팀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제들은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훨씬 이전부터 계속된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점들이었다. 이를 오직 허 감독의 책임으로만 모두 돌리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다가오는 최종예선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감안할 때, 언제까지 변명만 할 수는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허 감독의 책임만을 질타하기에 앞서 현재 대표팀이 처한 상황에 대한 냉정한 고찰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축구가 과거의 베어벡이나 본프레레 시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또다시 감독에게만 모든 멍에를 뒤집어씌우기보다는, 대표팀 운영과 최종예선 준비에 관한 협회 차원의 근본적인 대안 모색이 없이는 한국축구의 남아공행은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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