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40명 키운 ‘엄마스님, 아빠스님’

입력 2008.05.14 10:53  수정

다섯 명 개구쟁이 왁자지껄, “절이 아니라 집이에요”

경기도 화성 농촌마을의 작은 사찰, 천불사는 바람소리와 풍경소리만이 간간이 오가는 절집이다. 비구니인 주지스님(법명 도우·52)과 시인인 큰스님(법명 도운·55), 스님의 천방지축 개구쟁이 아이들이 산다. 그래서 이곳은 고요한 다른 절과 달리 아이들 웃음소리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천불사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절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는 도운스님. 아이들의 집인 천불사는 개구쟁이 아이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엄마, 아빠~ 어딨어요? 나 왔어~”

동네 어귀가 시끌벅적하다. 고만고만한 초등학생 서넛이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학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50여m 오솔길을 경쟁하듯 달려와 엄마, 아빠를 찾는다. 마당에서 화초를 돌보던 이 아이들의 엄마, 도우스님과 아빠, 도운스님이 반색을 하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안아준다.

물론 도우스님과 도운스님은 부부도 아니요, 이 아이들을 배 아파 낳지도 않았다. 모두 절에 맡겨지거나 업동이로 들어온 아이들이다. 1986년부터 그렇게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 40명이다. 임시로 맡겨졌거나 호적이 있는 아이들은 제외하고 혈혈단신 아이들은 도운스님이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갓난아기 때부터 절에서 길러진 아이들은 도우스님과 도운스님을 친부모로 알고 있다. 결국 사춘기가 되면 스님이 제 부모가 아닌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이들은 방황하지 않는다. 큰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하기 때문이다.

비구니 ‘도우스님’ 아이들 놀림 당할까봐 머리 길러

도운스님이 아이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생때같은 자식으로 안을 수 있었던 건 자신도 절집에 맡겨진 아이였기 때문이다.

시인인 도운스님은 신식 스님이다. 아이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피자도 잘 드신다.
“난 생후 7일째 되는 날 절에 맡겨졌어. 그 갓난아기를 제 아이도 가져 보지 못한 비구니 최천부스님이 거둬 길렀지.”

그 갓난아기는 비구니 스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커서 시를 쓰는 스님이 됐다.

“날 길러준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더욱 절절히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데 갚을 길이 없는 거야. 그런데 1986년 어느 날 누가 절 앞에다 아기를 놓고 갔네.”

시를 쓰는 스님은 업동이, 갓난아기를 보고 이젠 자신을 길러준 엄마스님에게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 둘 절에 들어온 아이들은 지금, 결혼을 했거나 혹은 직장 얻어 독립하고 또 일부는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천불사에 있는 아이들은 5명. 청소년인 두 아이 외 개구쟁이 초등생 3명은 도우스님과 도운스님을 친엄마, 친아빠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상처 입을까봐 취재나 인터뷰를 조심스러워 했다.

엄마스님인 도우스님은 비구니다. 아이들 오줌에 등창이 나도록 아이들을 업어 길렀다. 스님으로 출가해 머리 깎고 세상의 업을 다 던져버렸었지만 딱 한번 5년 동안 머리를 기른 적이 있었다.

“갓난아이들이 커서 유치원,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아 글쎄 애들이 엄마 학교 오는 게 싫대. 친구들이 너네엄마 까까중이라고 놀렸대. 그래서 도우스님이 그때 한번 머리를 길렀지. 애들 때문에…. 그때 도우스님 예쁘셨는데. 하하하~”

도운스님의 농담으로 웃었지만 듣는 이들의 마음에는 짠한 감동이 벅차올랐다. 비구니 스님이 아이들 기죽이기 싫어 머리를 기른 그 사랑은 세상의 어느 엄마보다 더 큰 사랑이었다.

아이들 상처받을까, 단체 도움도 거절

도운스님은 사회단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시에서는 복지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보조금 받고 아이들을 키우라고 한다. 하지만 도우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인가를 받아서 시설이라고 해 놓으면 애들이 노출이 돼. 그러면 애들에게 여긴 더 이상 제 집이 아닌 게 되는 거지. 지금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스님이 계신 여기가 제 집이라고 알고 있는데 인가를 받아 시설이라고 해 놓을 수 있겠어?”

맞다. 아이들에게 천불사는 절이 아닌 제 집인데, 다만 부모님 직업이 스님일 뿐인데 어떻게 보조금 받자고 시설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진정 아비의 마음이었다.

다른 복지시설에서는 조금이라도 보조금을 더 타내려다 부작용이 일어나곤 하는데 도운스님은 준다고 해도 조용히 거절한다. 그것도 아이들을 위해서다.

“보조금 줘 놓고 무슨 때 되면 사람들 데려와 사진 찍자 그러고 애들한테 사는 게 어떠냐는 둥 애들 맘에 상처만 입혀. 애들이 가장 싫은 게 그런 사람들과 사진 찍는 거래.”

그 뒤론 남들의 도움은 일절 사양이다. 그래도 걱정이 됐다. 작은 절이라 그다지 수입이 많지도 않을 텐데. 아이들이 한둘도 아니고 게다가 유학까지 보내면서….

“힘들지. 하지만 어떡해. 내 새끼들인데…. 요즘은 그래도 나은 편이야. 다 큰 놈들이 동생 챙기고 그러거든. 예전에 힘들었을 땐 탁발도 나갔어.”

애들 소원 들어주려 ‘고기 써는’ 신식 스님

많은 아이들을 기르면서 규칙이나 원칙은 없었을까?

“여기 규칙이라면 아이들이 잘못 했을 때 아무나 야단치지 못해. 야단치는 사람은 딱 두 명, 정해져 있어. 그 두 명 외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나 야단치거나 체벌을 가할 수 없어. 왜냐. 절엔 사람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잘못했다고 한마디씩 해봐. 말하는 사람은 한마디 했지만 듣는 애들은 수백 번 야단맞는 거야.”

“아빠~ 절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해요. 아, 근데 꽃이 예쁘지 않아. 이상하게 만들어졌어~” 막내 현태가 어버이날 도운스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있다.
그래서 야단칠 수 있는 사람은 뒷바라지 해주는 엄마와 작은 스님만이다.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또 하나의 배려다. 또 종교는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가치관이 정립되면 그 뜻에 따른다. 타 종교를 선택해도 그 뜻에 따른다. 그래서 법문을 가르치지도, 법당에 가서 절하는 것도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어른에게 절하는 건 유일하게 가르친다.

많은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신식 스님이 됐다. 아이들과 메일 주고받다보니 컴퓨터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아이들 입맛에 맞추느라 피자도 자주 먹는다. 얼마 전에는 극장구경도 다녀왔다. 큰 아이들 둘이 외국으로 유학 가기 전 엄마아빠와 팔짱끼고 극장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졸랐기 때문이다.

“아, 소원이라는데 어떡해. 그 뭐지? 가문의 영광인가 봤지. 스님 티 안 내려고 추리닝에 모자 푹 눌러쓰고 갔는데 그래도 티 났을 거야. 영화보고 저녁은 레스토랑에 가서 고기 썰었어. 지들이 용돈 아껴서 다 준비했지 뭐야.”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막내 현태가 부리나케 들어와 종이 카네이션을 도운스님 가슴에 달아준다. 이게 뭐여? 라는 스님에게 현태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슴에 파묻는다.

“아빠~ 절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해요. 아, 근데 꽃이 예쁘지 않아. 이상하게 만들어졌어~”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막내라 그런지 어리광이 장난이 아니다. 부비고 매달리다 같이 자전거 타러 가자고 조르기 시작이다. 스님은 허허 웃으며 결국 따라 나선다. 자비로운 부처님을 닮은 스님을 아빠로 둔 현태는 좋겠다.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담담한 스님아빠의 대답이 가슴에 남는다.

“결국 인생은 본인이 정하는 거야. 부모는 자식이 어떤 삶을 살던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지지해 주는 게 부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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