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물 ´아이디어는 돌고돈다´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8.04.23 11:17  수정

예능프로그램, 어떻게 아이템 재활용하나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멜로드라마에서 등장할법한 명대사는 패러디 방식으로 예능프로그램에도 적용된다. “아이템은 돌고 도는 거야”라고.

최근 예능물에서도 ‘리메이크’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예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아이템을 재활용하거나 새롭게 변형시키는 업그레이드 형태로 선보이는 코너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코너들은 노골적으로 ‘후속작’이나 ‘아류’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저마다 자연스럽게 전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기적의 승부사>는 최근 ‘사극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기승史>로 코너명을 변경, ‘풍류대담’이라는 새로운 게임을 선보였다.

두 명의 출연자가 서로 예정된 대답만을 하도록 미리 규정하고 곤란한 질문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독설개그의 설정은 영락없이 과거 <엑스맨>에서 선보였던 ‘당연하지’의 재탕이다.

어떤 질문에도 ‘당연하지’로만 답변이 한정되던 과거에 비해, ‘풍류대담’은 공격자가 상대방의 대답을 미리 지정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아나운서 김주희에게 출연자들이 ‘황소’라는 답변을 지정해놓고 “마님의 본명은”, “이걸 한 손으로 때려 잡으신다면서요” 하는 식으로 상대의 캐릭터를 희화화거나 약점을 잡아 몰아붙이는 식이다. 이것은 출연자들의 성향에 따라 고유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기승史>가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인 김주희 아나운서는 ‘풍류대담’을 통해 ‘힘주희’라는 별칭을 얻으면서 프로그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설전의 패자에게 ‘쌩얼 공개’, ‘물 뿌리기’ 등 벌칙을 다양화한 것도 ‘당연하지’에 비해 달라진 부분.

연예인과 아나운서 간 명랑운동회식 대결구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기적의 승부사> 시절에 비해, <기승史>는 ‘풍류대담’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엑스맨>의 재탕이라는 한계와 ´당연하지´시절부터 지적됐던 과도한 인신공격 성향이나 심지어 막말에 가까운 인격 모독 요소가 빈번하다는 것은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해피투게더-시즌3>의 상황극 ‘웃지마 사우나’는 그 뿌리를 찾자면 <무한도전>에서 <유머 일번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반 최양락-김학래 콤비가 선보였던 ‘괜찮아유’에서 파생된 이 코너는 유재석-박명수에 의해 <무한도전>에서 처음 리메이크 됐고, 역시 콤비가 같이 출연하는 <해피투게더>에서 고정 코너로 자리 잡으며 부활했다.

‘괜찮아유’가 사전 정해진 대본과 설정으로 짜인 콩트 형식이었다면, ‘웃지마 사우나’는 출연진들의 순발력과 애드리브에 의존하는 상황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노래방’이나 <상상플러스-시즌2>의 ‘풍덩 칠드런 송’ 등은 모두 과거 <해피투게더-시즌1>의 ‘쟁반노래방’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출연자들은 음악에 맞추어 노래 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야하며 틀리면 벌칙을 받는다.

사우나로 무대를 옮기며 노래가사의 완벽한 재현 자체보다는 신명나는 ‘놀이판’의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진화한 <해피투게더>에 비해, <상상플러스> ‘풍덩 칠드런 송’은 기존 쟁반노래방의 재탕이라는 ‘혐의’가 좀 더 짙다.

출연자들은 ‘쟁반노래방’처럼 나란히 앉아 우리 동요를 부르지만, 차이점이라면 한국어 가사를 영어로 소화한다는 것과, 쟁반 대신 밀가루 풍선이 벌칙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풍덩 칠드런 송’은 ‘사우나노래방’과 달리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쟁반노래방’ 시절에 비해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물론, 재미와 의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맥 빠진 리메이크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말’을 소재로 풍성한 웃음과 의미를 동시에 안겨준 <상상플러스>에서 갑작스럽게 영어를 내세운 것이 ‘변질’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한몫했다.

방송가에선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오늘날 대세로 불리는 예능가의 트렌드들도 숱한 시행착오와 변주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전작의 리메이크는 위험부담을 줄이고 기존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나 창조적인 변주 없는 무분별한 재탕은 오히려 실망을 주기도 한다.

‘모방’과 ‘진화’를 결정짓는 차이는 종이 한 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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