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미국 대북정책, 섣부른 환영은 금물?


입력 2021.05.14 04:30 수정 2021.05.13 22:36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美 표현' 명확하게 이해해야"

'단계적 접근' 확신하기 어려워

과거 美 '동시·병행 접근' 표현 '오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AP/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큰 틀의 미국 대북정책에 '환영'을 표했지만, '자의적 해석'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미국이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예단으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3일 통일연구원·국립외교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미국 측이 쓰는 개념에 대해 우리가 굉장히 분명한 입장을 갖지 않으면 나중에 당혹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단계적(phased) △조정된(calibrated) 등의 표현에 대한 한미의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단계적(phased)' 합의를 추구하지만 '단계별(step-by-step)'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북협상에 있어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관련 용어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미 간에 정확하게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을 경우, 뒤에서 '다른 뜻이었다'고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조야에선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을 '단계적 접근'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WP 보도 내용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 실질적으로 어떤 협상전략을 취할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티븐 비건 前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스티븐 비건 前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실제로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언급한 '동시·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접근'은 한미가 달리 해석한 대표적 표현으로 꼽힌다.


이 교수는 동시·병행적 접근을 "우리(한국)도 북한도 단계적 접근으로 해석했다"며 "하노이 결렬 직후 비건 특별대표는 '한 번도 단계적 접근을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내용을 잘못 이해한 쪽에서 하노이 결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시점에서 "미국이 완전히 단계적 접근으로 갔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당혹스러운 일이 또 생길 수 있다"며 "특히 (미국이) 'calibrated(조정된)'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언론에서 '조정된'으로 번역한 calibrated는 '과녁을 정조준해 그것에 맞게 구경을 조정한다'는 얘기"라며 "우리나라식으로는 '핀셋식 접근'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본다. 결국 아주 정교하고 정확하게 조정된 실질적 접근을 하겠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민 연구위원은 해당 표현과 관련해 "미국이 한두 가지 접근법을 취할 것으로 본다"며 "상황에 따라 북한 행동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것과 시간을 벌면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돼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선제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북한도 움직이지 않을 경우, 레토릭(표현)과 다르게 전략적 인내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미국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북한이 받아들일 때 결과적으로 전략적 인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결국 미국이 해석 여지가 있는 표현을 두루 사용하며 향후 협상 운신 폭을 확보하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민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단계적 접근을 뜻하는 'step-by-step' 'phased' 등의 표현을 모두 배제하고 "'일괄타결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will not focus on achieving a grand bargain)'고 했다"며 "일괄타결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미국이 다소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