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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전략] “급할땐 대기업”…다급해진 정부 정책기조


입력 2021.05.13 15:00 수정 2021.05.13 14:28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 2% 수준…현대차・삼성전자 긴급 수혈

중소기업 중심 혁신성장으로 한계…세제・제도개편 등 ‘당근책’ 남발 우려


메모리 및 시스템반도체 산업 전망 ⓒ산업연구원 메모리 및 시스템반도체 산업 전망 ⓒ산업연구원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전략에 대기업을 긴급 호출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시장 확대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가 내민 손에 ‘510조원 투자’로 화답했다. 특히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은 미래차 반도체 수성을 위해 흔쾌히 손을 잡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전략이 대기업 의존도를 높이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중소・중견기업 위주의 ‘분수효과’를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가 결국 급할때 대기업을 찾게된 형국이라는 것이다.


정부도 이같은 지적에 어느정도 수긍하는 눈치다.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지난 10여년 동안 관심밖이었다. 정부가 뒤늦게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눈을 돌려도 ‘후발주자’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쉽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삼성전자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조차 팹리스는 약하다. 메모리는 타겟이 명확하지만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최고 파운드리를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간 시너지가 극대화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지난해 시스템반도체 수출만 300억 달러를 올렸다. 메모리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는 꾸준하게 시장 넓혀가는게 현실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시동 건 시스템반도체…현주소는 ‘Fast Follower’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는 이미 개척된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시스템반도체는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에서 지워진 분야다. 이미 미국과 대만 등은 10여년 전부터 시작한 시스템반도체를 ‘수익성 부족’과 ‘불안정한 시장’을 이유로 외면해 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처음부터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은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메모리반도체 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가 급증하고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전기차 양산에 돌입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수요는 급격하게 늘었다. 급기야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지는 역전현상을 겪으며 초유의 반도체 부족 사태까지 왔다.


이처럼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시스템을 넘어가자 정부는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민간기업에게 투자를 독려하고 각종 지원책을 강화하며 시장 조성에 나섰다.


정부 역시 국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2% 미만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시장 형성이라고 볼 수 없는 수치인 셈이다.


파운드리 점유율도 어느새 대만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올해 1분기 파운드리 글로벌 점유율을 보면 대만 TSMC가 55%, 삼성전자가 17%다. 1위와 2위 기업의 거리가 상당하다.


정부는 시스텝반도체 생태계가 열악한 원인으로 ▲기반기술 부족 ▲전문인력・시장수요・기술수준 등 성장기반 부족 등을 꼽았다. 제조와 공정 역량은 우수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는 고급인력 부족, 초기투자 부담, 핵심IP(설계자산) 부재, 높은 시장진입장벽 등이 존재한다”며 “여기에 첨단 패키징은 대만 기업이 선도하는 추세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기술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인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 산업부가 지난해 조사한 반도체산업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 인력 부족은 연간 약 1500명 수준이다. 시장수요 역시 반도체 주요 수요처인 자동차・전자산업(스마트폰, TV 등) 등에 글로벌 수요대기업이 있지만 연대・협력 미흡으로 시장 형성이 어렵다.


또 기술수준 역시 전력반도체, AI반도체 등 미래 유망분야(미래차,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되는 핵심부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대기업 뒤에 숨어버린 정부…상반기 ‘반도체 특별법’에 사활


이번 대책의 핵심은 ‘대기업’이다. 지금까지 각종 경제정책 발표에서 정부 중심의 대책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민간에게 공을 돌렸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R&D 투자 1조5000억원, 각종 세제 지원, 반도체 특별법 등이 전부다.


이날 열린 K-반도체 전략에서도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정칠회 네패스 회장 등 민간기업들 전략 발표가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정부 발표에서 민간기업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정부가 앞세운 혁신성장 빅3(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발표 당시에도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특히 대기업들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전략발표를 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만큼 현재 정부에서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이날 정부는 반도체를 ‘산업의 쌀’ ‘전략무기’라는 표현까지 썼다. 반도체 경쟁이 기업 중심에서 국가간 경쟁으로 심화됐다는 경각심도 내놨다.


이번 전략은 대기업 입장에서도 도박과 같다. 정부 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정부도 기업 요구를 가감없이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번 국회본회의에 상정될 ‘반도체 특별법’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반도체 특별법은 아직 구체화된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이번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특별법은 지난해 9일 반도체 업계 건의문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이 의견을 수렴해 특별법 제정 여부와 입법방향을 국회・관계부처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 구상은 돌아오는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상반기 중 국회와 안건을 논의 후 세부사항을 마련한다. 이미 여당은 어느정도 윤곽을 잡았다. 특별법 제정에 긍정적이다. 특별법에는 국내 유사한 법률과 정합성, 국제 규범 등을 고려해 입법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반도체 특별법 제정 추진 시 ▲규제 특례 ▲인력양성 ▲용수·전력 등 기반시설 지원 ▲신속투자 지원 ▲R&D 가속화 방안 등 종합적인 방안도 포함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특별법을 여당 중심으로 논의 중”이라며 “반도체 산업 환경 변화라던지 주요국 추이 보면서 입법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번 반도체 전략의 핵심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구체적 수치와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이번 정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확실한 추진력이 보장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업계 요구가 모두 수용되더라도 한시적 당근책은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에 투자를 하지 않은 근본적인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며 “민간기업들 투자를 정부가 성과와 실적으로 과대포장하는 부분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부의 과감하고 적극적인 의지가 없으면 생태계 조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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