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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꿈, 기다림에 관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입력 2021.05.06 13:00 수정 2021.05.14 09:04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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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에 관한 연극이다. 극중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인지는 알 수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사, 맥락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 당시 초연될 때만 해도 평단과 대중들에게서 외면받았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장르인 부조리극이라는 재평가와 함께 호응도가 높아지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에 대한 대명사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는 ‘고도’를 특정하지 않아 관객들은 자신의 처지에 맞게 희망, 자유, 꿈 등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또한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에 떨어진 삼수생 영호(강하늘 분)는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 같은 학원, 친구 수진(강소라 분)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영호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초등학교 동창 소연에게 편지를 보내고 소연의 동생 소희(천우희 분)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편지를 쓰면서 두 사람의 편지는 이들의 지친 삶에 위로가 된다. 영호와 소희는 12월 31일에 비가 오면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영호의 기다림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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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20대 청춘을 대변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은 2003년,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던 시기다.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세상은 변해갔다. 급변하는 환경에 모두가 긴장과 불안이 높아지던 때였다. 영화 속 주인공 영호, 소희, 수진은 20대 초반으로 가장 찬란하지만 가장 불안한 시기를 맞고 있다. 뚜렷한 삶의 꿈과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두 인물을 통해 영화는 무채색의 무료한 일상에서 상대방의 따뜻한 말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또 자신만의 꿈을 찾는 이야기다. 영호는 아버지에게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할지를 묻는다. 아버지는 고진고래, 고생 끝에 고생이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답한다. 우리 모두는 꿈을 좇아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그 꿈에 많은 사람들은 버거워한다. 또한 꿈을 이루지 못하면 좌절하고 힘들어 한다. 사실 꿈은 미래라는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이고 자신이 만든 목표이기 때문에 즐겁고 좋아야 한다. 그래서 꿈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꿈과 목표가 없던 영호는 비를 좋아하는 소연을 만나는 것이 바람이었다. 8년이라는 기다림 속에서 즐거웠고 마침내 우산을 제작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영화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최고로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꿈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힘내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옳다고 강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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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도 건넨다. 경기불황은 복고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 있다. 불안 속에서 위안을 받고 싶은 심리 때문에 요즘 TV 드라마는 물론 영화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에 집착하고 있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2000년대 느낄 수 있는 가로본능 핸드폰, 빨간우체통, 헌책방과 같은 코드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 시키고 있다.


늘어난 실업과 주택가격상승으로 청년층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찬란하게 빛나야 할 20대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청년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제도의 보살핌이 절실히 요구된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고민과 아픔을 감성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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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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