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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마른 경제통①] "공부 좀 해라" "저항 세력"…非전문가 정치인의 적반하장


입력 2021.01.26 07:00 수정 2021.01.26 08:25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정치권 비대화에 경제관료 수난시대

나라 곳간지기에 모독적인 언어폭탄

"정부 입법 심의·견제 제대로 작동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나라살림을 맡은 경제관료들 위신이 심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총리로부터 통째로 "저항세력" 취급을 받는가 하면, 급기야 한국경제 컨트롤타워 격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대선 유력주자인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제 공부 좀 하라"고 꾸지람까지 들었다.


이들 죄목은 정치권 무차별적 돈풀기 추진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당은 월 지출 25조원에 달하는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 4차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등 연일 '퍼주기식' 강도 높은 지출대책 내놓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는 보상 기간을 5개월만 잡아도 무려 123조5000억원이 들어가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를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지난해에만 추경이 4차례나 편성된 터란 재정당국 입장에선 다시 수백조원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같은 점을 인식한 경제관료들은 나라살림을 맡은 곳간지기로서 할말을 했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모독적인 언어폭탄이었다. 홍 부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진 지난해부터 정치권 돈풀기에 여러번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지만 번번히 정치권 기세에 눌려왔다. 부총리가 풀이 죽어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자 이번엔 차관이 총대를 메고 발언했다가 총리에게 초전박살이 났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정치권이 자영업 손실보상제 입법화에 대한 군불을 때자 "해외 같은 경우 1차적으로 살펴본바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 피해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정부와 국회가 논의해서 지원패키지를 짜는 것"이라고 기재부 입장을 명확히 표명했다.


하지만 그의 당찬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세균 총리는 이러한 발언이 나오자마자 김 차관을 향해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개혁 과정엔 항상 반대 세력, 저항 세력이 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며 급기야 기재부를 저항세력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그러자 김 차관은 이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20대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기재부를 향해 직설적 발언을 퍼부었다. 이 지사는 지난 12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4차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을 고수하는 기재부를 향해 "조금 험하게 표현하면 게으른 거 아니냐. 변화된 세상에 맞춰서 공부도 좀 하고 고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는 홍 부총리가 국가재정, 실효성 등을 고려해 선별적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입장을 밝힌 직후다.


이 지사 발언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재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뭐가 되겠나"며 홍 부총리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홍 부총리 위신이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대목이다. '구박'이란 단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다그칠 땐 써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지 않는다. 부총리가 어느새 지자체장에게 구박받는 신세가 된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치권 비대화로 입법부와 행정부 간 균형추가 깨어진 탓이라고 진단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연구위원은 "정책 담당자 목소리가 합리적이라면 반영돼야 하지만 지금 구조는 정책 담당자보다 정치권에 힘이 쏠려 있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재미를 본 무리들이 또다시 선거가 목전에 다가오자 포퓰리즘적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식 한국경제학회 부회장은 “정부관료는 퇴임할 때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들로 정책을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반면 정치인들은 4년마다 바뀌는 사람들"이라며 "선진국처럼 정부 입법 심의 및 견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한편으론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나서줘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니까 부총리가 경제대책의 책임을 다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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