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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별세] 남달랐던 스포츠 사랑, 평창올림픽 유치 결실


입력 2020.10.25 12:19 수정 2020.10.25 12:44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대한레슬링협회장 맡는 등 스포츠 발전에 큰 공

몸 불편함에도 불구, 평창올림픽 유치 위해 IOC위원 집 일일이 찾아다녀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 삼성전자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 삼성전자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삼성은 25일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고인과 유가족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고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 별세 후 그룹 회장직에 오른 고인은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시킨 기업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와 함께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 한국 체육계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과 한국 체육계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 레슬링, 럭비 선수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려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직에 올라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2년 레슬링 선수단 격려. ⓒ 삼성전자 1982년 레슬링 선수단 격려. ⓒ 삼성전자

이후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아 2017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 스포츠 외교에 힘을 쏟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9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131차 IOC 총회에서 IOC 명예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야구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족적이 뚜렷하다. 이 회장은 1981년 12월, 프로야구 창립 총회가 열린 뒤 가장 먼저 프로야구팀을 창단을 선언했고, 그 결과가 바로 대구, 경북을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다.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구단주를 역임했던 이 회장은 선수단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았는데 국내 프로 팀 최초로 해외 전지훈련을 추진했고 2군 전용 훈련장인 경산볼파크를 건립해 삼성을 KBO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이끌었다.


야구에 대한 사랑은 병상에서도 계속됐다. 2014년 한 매체 보도를 통해 이 회장이 입원해있던 병원 내 분위기가 전달됐는데, 당시 TV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특히 이승엽이 홈런을 친 순간 이 회장이 눈을 떠 기뻐했다는 소식이 이재용 부회장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삼성은 1997년 올림픽 파트너로 선정됐다. ⓒ 삼성전자 삼성은 1997년 올림픽 파트너로 선정됐다. ⓒ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돼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평창 올림픽이다.


앞서 이건희 회장은 90년대 말, 그룹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글로벌 마케팅에 눈을 돌렸고 삼성은 곧바로 올림픽 공식 후원사의 한 자리를 꿰찼다. 스포츠를 통한 광고 효과의 위력을 누구보다 빨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개최된 IOC 총회에서 전 국민들이 기뻐한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확정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직접 더반까지 날아가 평창을 홍보했고 올림픽 개최지가 발표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때 나온 일화들이 상당하다.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 직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이건희 회장은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 위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했다. 너무 감사했다”라고 밝혔다.


IOC 행사장에서는 한 IOC 위원과의 저녁 약속이 잡혔다. 하지만 해당 위원이 다른 약속이 잡혔다며 이건희 회장과의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하자 “괜찮다. 늦게 오더라도 기다리겠다”면서 1시간 반 가량 기다렸던 일화도 유명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만난 이건희 회장. ⓒ 삼성전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만난 이건희 회장. ⓒ 삼성전자

이 회장의 홍보 활동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6개월간 이어졌는데 이 기간 총 11차례의 출장으로 170여일을 해외에서 보냈고 이동 거리만 지구 5바퀴인 21만km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이건희 회장은 올림픽 유치에 지대한 공을 세웠음에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모습이었다.


이 회장은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뒤 귀국해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김연아가 많은 힘을 썼다”고 공로를 치하한 뒤 “(이명박)대통령께서도 정말 열심히 하셨다. 수십 명의 IOC위원들을 만났고 영어 연설 원고를 아예 외우기까지 하셨다”고 박수를 보냈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라는 명언을 남겼고, 삼성 그룹의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끌었다. 다 바꾸라는 말은 그가 손을 내밀었던 스포츠 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으로 이어졌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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