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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㉛] 싱어송라이터 섞김, 무언가를 ‘섞는’ 일의 가치


입력 2020.10.21 14:14 수정 2020.10.21 14:15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첫 정규 앨범 '불규직, 제1규칙' 10월 14일 발매

ⓒ섞김

싱어송라이터 섞김은 활동명을 지으면서 곡을 쓰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 무언가를 ‘섞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싱어송라이터의 특권은 추억을, 혹은 힘들었던 시기를 음악으로 섞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발매한 첫 정규앨범 ‘불규칙, 제1규칙’을 통해서도 자신의 10가지 규칙과 불규칙을 섞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이 앨범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을 이겨내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섞김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음악을 듣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섞김은 지금 하고 있는 ‘섞는 일’이 앞서 자신이 뮤지션들에게 받았던 위로와 즐거움처럼, 그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갚아나갈 수 있는 행위가 되길 희망했다.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생 시절 추석에 본 서태지의 컴백 콘서트를 보고 알 수 없는 의무감이 들었어요. 그다음 날 바로 대형 마트에 가서 테이프를 사고 늘어지도록 들었습니다. 그렇게 밴드 음악에 입문하게 됐고, 중학교 때쯤 처음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 뒤로 그냥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아, 나는 앞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 활동명 ‘섞김’은 무슨 뜻인가요.


곡을 쓰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 뭔가를 섞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억을 섞을 수도 있고 힘들었던 시기를 섞을 수도 있고요. 작곡만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믹싱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하. 그래서 섞는다는 말과 제 본명 중 두 글자를 이용해 ‘섞김’이라고 지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본명으로 하려고 했는데 재밌게 잘 지은 것 같습니다(웃음).


- 첫 앨범 ‘새벽춤’을 발매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몇 차례 앨범을 낸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모든 기획과 작업을 한 건 ‘새벽춤’이 처음이긴 하지만, 이 앨범이 ‘데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발매 직후엔 일주일 정도 멘탈이 나갔었어요. 허무하고 아쉽고 그런 마음들이 강했거든요. 음원을 발표할 때마다 매번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새벽춤’은 작업 기간이 길어서 그랬는지, 특히 더 심했던 것 같네요. 사실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앨범이라 마음이 힘들었는데 요즘엔 그 곡이 좋게 들려서 기쁩니다.


ⓒ섞김

- 지난 14일 첫 정규 앨범 ‘불규칙, 제1규칙’이 나왔습니다. 첫 정규인 만큼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습니다.


2017년 10월에 첫 작업을 시작해 2020년 10월에 발매했으니 정확히 3년이 걸렸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열심히 곡을 쓴 뒤 한 앨범으로 묶일만한 곡들을 모았고, 그 다음 2년째에 본격적인 편곡, 녹음, 가이드 믹싱을 한 뒤 최종 10곡을 추려냈습니다. 마지막으로 3년 차인 올해에 문화인 레이블과 함께 후반 사운드 작업을 7~8개월 정도 더 진행했습니다.


- 이번 앨범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처음부터 정규앨범을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3곡 정도의 자신 있는 노래들로 싱글을 내려고 했었는데 1년이 지나도 제 마음에 드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때 스스로에게 많은 실망을 했었는데 ‘이런 식이면 나는 평생 몇 곡이나 발표할까’라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아요. 또 그 시기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이 많아서 노래를 많이 쓰게 됐는데 곡이 쌓이다보니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정규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수록곡들의 가사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된다는 점입니다.


풀 앨범이 낼 수 있는 힘을 갖추려면 당연히 모든 곡이 하나의 세계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사가 될 수도, 장르나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제 경우에는 가사가 그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 수록곡의 배열을 비롯해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들이 있나요?


너무 많은 부분을 신경 써서 신경 쓰지 않은 점을 꼽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하하. 굳이 꼽아보자면 송폼이 안정적인가, 가사가 솔직한가, 앨범에서 겹치는 이미지가 없는가, 앞 곡이 뒷 곡에 도움을 주는가, 전체 10곡의 기승전결이 확실한가, 가사와 제목, 사운드가 일치하는가 등을 생각했습니다. 사운드 적으로는 이 앨범만의 고유한 컬러가 있는가를 생각했고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냥 좋은 앨범이 되고 있는가였던 것 같아요.


곡 순서와 제목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는데 곡 순서는 매일매일 잠들기 전에 1번부터 10번곡까지를 쭉 들으면서 가장 이상적인 순서를 정하는 것에 1년 정도가 걸렸고, 9번곡의 제목 같은 경우에는 최종 발매 전까지도 ‘완전한 나’와 ‘엔트로피 네겐트로피’라는 제목을 두고 고민을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완전한 나’로 결정지었지만, 영어로 그 느낌을 온전히 내기가 어려워서 영어 제목으로는 후자를 골랐습니다.


-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하다보면 어려운 부분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신에 원하는 지점을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를 직접 풀어야 했던 점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자존감이 매일매일 오르락내리락한 게 힘들었는데 마음에 드는 곡을 쓰거나 작업이 잘된 날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만 며칠씩 듣다 보면 저 자신의 판단에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오거든요. 그럴 때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체력적으로는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귀가 좀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웃음)


-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과정을 극복할 수 있던 계기가 있을까요?


매 순간이 어려움의 연속이어서 하나를 해결하면 다음 문제가 드러나는데 그것들을 해결하다 보니 정신적,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동기가 점점 고갈되어가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극복은 생각보다 단순했는데, 작업을 하는 순간들 자체가 저에게는 일련의 극복 과정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 중에 ‘힐링프로세스’라는 앨범이 생각나는데 힘들고 어려운 일 투성이었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이 저에게 힐링프로세스였던 것 같습니다. 아,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해서 미안한데 언젠가는 꼭 갚고 싶습니다.


- ‘N과 N과 S’ ‘석별의 베이스’를 더블타이틀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회사에서 추천해주셨습니다. 하하. 저 나름의 타이틀 후보도 있었지만 사실 저에겐 10곡 모두가 타이틀이기 때문에 어떤 곡이 선정되어도 큰 상관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곡이 이번 앨범에서 가장 큰 주제인 ‘거스를 수 없는 것을 이겨내려는 과정’을 각기 다른 이야기로 잘 대표하기에 마음에 듭니다.


ⓒ문화인

-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만큼, 타이틀곡 외에도 소개해주고 싶은 수록곡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불규칙 제1규칙’은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시작하자마자 한 방 먹이는 연출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점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문에서 문’은 앨범에서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기에 작곡 단계에서부터 다수의 공감을 살 노래가 아니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음악적으로 많은 시도를 했는데 일반적으로 센터에 있어야 할 베이스사운드를 좌우 스테레오로 만들어 현실 세계가 아닌 곳에 있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려 했습니다. 저음이 잘 표현되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내 탓’은 어찌 보면 앨범 내에서 가장 무난한 스타일이 될 수 있었던 곡입니다. 3번 트랙 ‘문에서 문’과 마찬가지로 그 점을 사운드적으로 보완하려 곡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파트로 디자인했습니다. 과거에 해당하는 전반부 드럼사운드가 조금 특이한데 평범한 사운드의 드럼 소리를 스피커로 나오게 하고 그걸 다시 휴대폰 녹음기로 녹음 받은 소스를 곡 내에서 활용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가장 참신한 방법이었는데 어떠한 음악편집 플러그인으로도 내주지 못한 특별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 기법은 1번곡의 시작, 10번곡의 엔딩에서도 활용했습니다.


‘완전한 나’는 10년 전쯤 초안을 만들었던 노래를 다듬어 완성했습니다. 노래 자체가 다소 기이한 송폼을 가지고 있는데 계속해서 바뀌는 송폼 속에서 반복되는 편곡들이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곡이 진행되길 원했습니다. 덧붙여 절망과 희망이 함께 뒤섞여 들리도록 사운드를 디자인했습니다.


- 앨범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배움’의 지점이 있었는지, 또 이 배움이 향후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하네요.


잘하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가장 좋은 시점을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다음 앨범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작업을 하게 된다면 곡과 작업 모두 이번보다는 힘을 좀 빼고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고 싶어요.


- 앨범 소개에 ‘나의 열 가지 규칙, 불규칙’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라고 봐도 될까요?


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노래는 발표되는 순간 뮤지션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자의 시선과 상황에서 청자 자신만의 이야기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 ‘섞김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높진 않지만 깊은 곳, 나만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전문분야의 실력자들에 비해서는 당연히 많이 떨어지지만 혼자이기에 가능한 도착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 앞으로 섞김은 대중들에게 어떤 음악을 보여주게 될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내일 메탈 코어 음악을 할 수도 있고 힙합을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어떤 음악이 나올진 저도 모르지만 부디 저 자신에게 ‘힐링프로세스’가 되는 곡, 더 욕심내 많은 분들에게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 벌써 10월입니다. 올해 세워뒀던 계획에 어느 정도 근접했나요.


올해의 계획은 2020년에는 반드시 앨범을 발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4년 차로 넘어가기엔 집중력이나 동기가 더는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아쉬움이 남지만 어찌 됐든 저 자신의 큰 숙제가 하나 끝난 점은 기쁩니다.


- 앞으로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당장 코앞의 목표는 (목표라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이번에 발표한 10곡의 노래가 저에게도 빨리 ‘노래’로 들렸으면 합니다. 후반 사운드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아직도 음악이 음악으로 들리지 않고 음향적으로만 들리거든요. 어서 시간이 좀 흘러 열심히 만들고 불렀던 가사가 귀에 들리는 온전한 노래 그 자체로 들렸으면 좋겠고 최종목표라고 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음악을 오랫동안 만들고 싶습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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