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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개편바람②] 발전사업자-대기업 신재생 직거래 추진, 속내는 REC 보조금 폐지?


입력 2020.10.19 07:00 수정 2020.10.18 08:58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한전 제외, 발전사-기업 신재생 전기 직거래

'망 비용' 책정 방법 두고 혼란 초래할 가능성

계약마다 판매가격 달라 형평성 시비 불거질듯

"REC 지원예산 줄이겠다는 숨은 의도" 지적도

신재생 발전사업자와 기업 간 전력거래를 허용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유준상 기자 신재생 발전사업자와 기업 간 전력거래를 허용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유준상 기자

우리나라 전력산업 구조에 개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입법발의한 복수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에는 '한국전력의 발전사업 허용'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기업 간 전력거래(PPA) 허용' 등이 담겼다.


이는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일환인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급작스럽게 추진하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데일리안은 전력산업 개편 내용을 살펴보고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가져올지 분석했다.


한전 생략, 발전사-기업 신재생 전기 직거래
발전사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전기가격 결정
"발전사와 기업 모두 경제적 이익 확보 가능"


#, 한국동서발전과 현대차는 동서발전이 울산 앞바다에 짓는 연간 발전량 100GWh급 해상풍력단지에서 70GWh를 현대차 울산공장에 20년간 공급하는 내용으로 장기계약을 체결한다. 동서발전은 고정 수요처를 확보하면서 사업 추진을 위한 PF대출을 받기 쉬워졌다. 현대차도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와 여당이 미래 이러한 그림을 그리며 전기사업법 개정에 나섰다. 기업들이 한전 등 전력시장을 배제하고 발전사업자로부터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전력산업을 개편하는 내용이 골자다. 일명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성환 의원, 양이원영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28명은 지난 7월 1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PPA법)'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해당 법안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됐으며, 국정감사 이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법안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전력거래소가 개설한 전력시장에서 한전을 통해 전기를 구매해야 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 LG 등 기업들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전기를 구매할 수 있다.


김성환 의원실은 "거래소와 한전에 의한 중간 가격 조정을 거치지 않아 기업들은 저렴하게 신재생 전기를 구매할 수 있고, 발전사업자들은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정부 개입이 완전히 사라지고 발전사와 기업이 직접 전기요금을 정해 계약할 수 있어 앞으로 신재생 전기 사용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RE100'을 실현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RE100에 가입한 주요 글로벌 기업이 235개를 넘어섰다. 이들 기업은 협력업체에도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제고하려면 직거래를 열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의원실은 PPA 제도로 기업과 발전사 모두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발전사의 '발전단가'는 연료비 등에 영향을 받아 시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한다. 반면 발전사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파는 가격인 '정산단가'는 고정돼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정산시스템을 거치지 않으면 발전사는 발전원가가 정산단가보다 높은 시점에 기업과 장기고정계약을 체결함으로 이윤을 높일 수 있다"며 "전력거래소와 한전에 의한 중간 가격 조정을 거치지 않아 기업들도 저렴한 가격에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 개입이 사라지고 발전사와 기업 양자가 자율적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전력시장 교란 초래하는 문제 다수 양산
'망 비용' 책정 방법 두고 혼란 초래 예상
계약마다 판매가격 달라 '형평성' 문제 유발


한국중부발전 본사. ⓒ중부발전 한국중부발전 본사. ⓒ중부발전

하지만 전력업계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일대일 자율계약을 하면 전력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우선 망 비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송·배전선로 등 망은 한전이 설치하고 운영 및 관리하고 있다. 한전은 '전력도매가격(SMP)'에 적정수준 '망 비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책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전 입장에서도 SMP는 정확하게 산출되지만 망 비용의 경우 정확히 어떤 가격에 책정해야 하는지가 까다로운 난제다. 한전이 망 투자를 하는 시기엔 단가를 올려야 하고 투자를 안 하는 시기엔 내려야 한다. 또 주택용·산업용 등 용도별 전력 사용량이 매우 커 송배전 원가를 다르게 책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확히 망 비용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고, 설사 있더라도 한전이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거래를 할 경우 판매가격은 발전사업자와 기업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망 비용으로 한전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간단하지가 않다. 노동석 미래에너지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원가가 70원인데 판매가격이 120원이면 망 비용이 50원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지금은 한전이라는 거대 전력공기업이 망 비용을 일괄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직거래를 할 경우 한전에 지불해야 할 망 비용을 어떻게 책정할지를 놓고 시장에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재생 발전사업자가 계약을 맺는 기업의 규모나 재정 상황에 따라 판매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수 있어 필연적으로 '형평성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석 선임연구위원은 "계약 당사자 간 판매가격을 정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기업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며 "또 장기간, 대용량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게 돼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전기를 많이 사는 사람에게는 싸게 팔고 적게 사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파는 건 시장의 원리"라며 "가격 때문에 기업 간 형평성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계약량만큼 신재생 공급 못받을 위험성 잔존
기존 전력시장 부하율 엉망으로 만들 가능성
"REC 지원 더는 않겠다는 숨겨진 의도 보여"


장기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재생에너지 특유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계약 내용에 명시된 전기량만큼 일정하게 공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태양광은 낮에만, 풍력은 바람이 불 때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비(非)기저발전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동서발전이 현대차에 해상풍력 100GWh 중 70GWh를 공급하는 계약이 실제 체결더라도 70GWh를 일정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가 계속되면 50GWh, 심지어 30GWh밖에 받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선 나머지 모자란 전력량 만큼 한전에서 사와야 하는데 모자란 양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부하율이 엉망이 돼버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관계자는 "한전 입장에선 불안정한 수요에 대비하려면 예비 설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비자를 악성 소비자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한전은 악성 소비자들에겐 판매단가에 부담비용을 더 얹은 차별적 비용을 부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궁극적으로 전력업계는 저웁가 PPA법을 추진하는 건 예산을 들여 운영하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제도를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보고 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하기 위해 신재생 사업자들에게 SMP 외에 가중치를 적용한 REC 보조금를 지원해왔다. 전기 직거래를 할 경우 REC를 지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민간발전협회 관계자는 "REC 지원을 폐지해 신재생에너지를 SMP만으로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하루빨리 도달시키기 위해 PPA제도를 시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바꾸어 말하면 REC 정책자금으로 소요되는 예산을 줄여나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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