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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⑬] '스타'일 뻔했다가 '배우', 로버트 패틴슨(테넷)


입력 2020.09.08 13:19 수정 2020.09.08 17:1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코로나19 확진…6번째 브루스 웨인, ‘배트맨’ 촬영 중단

‘트와일라잇’으로 할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 그러나…

톱스타 자리 연연 않고, ‘작품 보는 눈’으로 배우로 성장

'맵 투 더 스타'의 제롬 ⓒ와이드릴리즈㈜ 제공 '맵 투 더 스타'의 제롬 ⓒ와이드릴리즈㈜ 제공

로버트 패틴슨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졌다. 그가 주연한 ‘테넷’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스크린에서는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있는 가운데 들려온 소식이라 팬들의 놀라움이 컸다.


패틴슨의 확진으로 영화 ‘배트맨’의 촬영이 중단됐다. 그는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크리스찬 베일, 벤 에플렉에 이어 6대 배트맨으로 캐스팅됐다. 4대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훌륭한 선택이다. 로버트 패틴슨은 흥미로운 배우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배트맨’을 포함,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영화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크리스찬 베일이 ‘흥미로운 배우’라고 표현했는데, 로버트 패틴슨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할리우드 톱스타지만 그렇게만 표현하기엔 배우로서의 입지가 확실하고, 블록버스터에만 출연하는 게 아니라 제작 규모 상관없이 좋은 감독이나 연기 선배들과의 작업을 통해 진중한 연기력을 다져왔다. 말끔한 외모가 빛나는 역부터 흙먼지투성이로 밑바닥 삶을 견디는 역까지 광폭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시켰는가 하면 가수로 활동하는 누나 2명의 동생답게 노래도 잘한다(영화 ‘하우 투 비’). 가장 확실한 건 작품 보는 눈이 있다는 것,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자신을 배우로서 성장시켜갈 영화들을 선택해 왔다.


'트와일라잇'의 신성,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NEW 제공 '트와일라잇'의 신성,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NEW 제공

패틴슨의 데뷔작은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베니티 페어’(2005) 단역이었지만 극장 개봉 당시 삭제됐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앳된 해리 포터 옆에 가끔 서는 마법학교 학생인데, 눈에 띄게 크고 잘생겨서 기억에 남은 캐드릭 디고리가 그다. 로버트 패틴슨이 대중에게 성큼 다가선 건 ‘트와일라잇’(2008)이다. 매력 넘치는 뱀파이어 역으로 할리우드의 모든 이목을 끄는 혜성이 됐다.


에드워드 컬렌은 남다른 뱀파이어였다. 주식인 인간의 피를 최대한 피하려 하고, 같은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 여자를 사랑하고, 연인인 벨라 스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목을 물어 뱀파이어로 만들면 지독하게 길고 외로운 생에 동반자가 생기는 걸 텐데 고독한 뱀파이어의 삶을 만류한다. 핏기없는 하얀 얼굴, 빛보다 빠른 움직임, 벨라 외 모두에게 얼음처럼 차가운 성격, 벨라를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뜨거운 심장은 전 세계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는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 Part1’ ‘브레이킹 던 Part1’까지 5년 동안 5개 작품을 통해 남녀불문 열혈 팬층을 형성했다.



'리틀 애쉬'의 달리 ⓒ판씨네마㈜ 제공 '리틀 애쉬'의 달리 ⓒ판씨네마㈜ 제공

패틴슨은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기다리지 않았다. 1편과 2편 사이 선보인 ‘리틀 애쉬: 달 리가 사랑한 그림’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로 분했다. 18세 달리가 1922년 격동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만난 친구들, 미래의 시인-영화감독과 나누는 우정을 그린 영화에서 패틴슨은 천재 예술가의 고뇌와 신념의 태동을 훌륭히 연기했다. 시인 친구와의 예술적 교감이 동성애로 교차하는 감정도 편안하게 연기했다. 2편과 3편 사이에는 멜로영화 ‘리멤버 미’를 촬영했고, 3편과 4편 사이에는 데뷔작에서 여주인공과 단역으로 만났던 리즈 위더스푼과 어깨를 나란히 한 ‘워터 포 엘리펀트’를 선보였다. 4편과 5편 사이에도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벨 아미’에서 19세기 파리 사교계를 뒤흔든 옴므 파탈 벨아미 역을 소화했다. 신분상승을 위해 사교계의 여왕(우마 서먼 분)마저 쥐락펴락하는 능수능란함을 유연하게 연기했다.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 ⓒ더블앤조이 픽쳐스 제공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 ⓒ더블앤조이 픽쳐스 제공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끝난 뒤 로버트 패틴슨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연달아 두 작품을 함께했다. 거장과의 첫 번째 작업, ‘코스모폴리스’(2012)를 통해 확인시킨 연기력은 로버트 패틴슨을 둘러싼, 정확히 말하면 ‘트와일라잇’ 시리즈 극중 부부에서 실제 연인으로 발전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염문설로 인한 가십을 잠재웠다. 패틴슨과 공개 연애 중에 스튜어트의 파파라치 컷이 공개됐다. 상대는 출연 중인 영화의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었다.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한 스튜어트는 솔직했고, 염문설에도 바로 헤어지지 않고 이해의 태도를 보인 패틴슨도 대단했는데, 두 사람의 태도는 되레 가십 보도의 좋은 먹잇감이 되던 상황이었다. 패틴슨은 제2의 세계공황의 주범으로 지목된 젊은 재력가 에릭 패커 역을 맡아 줄리엣 비노쉬, 폴 지아마티 같은 연기파 배우들과 호연을 펼쳤다. 줄리엣 비노쉬와는 6년 뒤 ‘하이라이프’에서 재회한다.


두 번째 작업, ‘맵 투 더 스타’(2014)에서는 배우가 되고 싶은 대리운전 기사 제롬을 연기했다. 할리우드의 민낯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통해 풀어낸 이 영화는 배우 전도연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제6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고 줄리안 무어(하바나 역)에게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주었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연출작 ‘스토커’에서 주목받은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배우 하바나의 매니저 역으로, 존 쿠삭이 셀럽들의 치료사로 나와 스릴을 더한다. 패틴슨은 크로넨버그의 시나리오를 받아 2장을 넘기기도 전에 탄성을 질렀고 출연을 결정했다.


'굿타임'의 코니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굿타임'의 코니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개인적으로 로버트 패틴슨이 그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후줄근한 모습으로 분했을 때의 연기를 좋아한다. 사각 턱에 매부리코, 원래의 생김이 도드라지는데 훨씬 배우 느낌이 난다. 그가 아무리 좋은 작품들에서 좋은 연기를 펼쳐도 스타 배우인 것, 미남자임을 잊기는 쉽지 않은데. 그나마 흙투성이가 되든 세상 밑바닥 삶을 사는 배역이 되면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지 다시금 기억나기 때문이다. 영화 ‘메멘토’의 가이 피어스에게 인질로 잡힌 ‘로버’(2014)에서의 모습이 그렇고, 특히 ‘굿타임’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지적장애를 동생 닉과 불안한 눈동자에 거친 말을 내뱉는 형 코니, 그들은 비참함을 주는 뉴욕에서 벗어나고자 은행을 턴다. 수중에 들어온 2만 달러, 이제 뉴욕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녹록지 않다. 쫓고 쫓기는 하룻밤 광란의 질주에서 패틴슨은 형 코니를 맡아 숨이 턱턱 막히는 밤의 열기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굿타임’을 처음 본 게 칸국제영화제 기간 중 현지 동네극장에서 자막도 없이 봐서 패틴슨의 연기가 더욱 열기의 덩어리로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전혀 굿 타임이 아닌 처절한 현실, 멈출 수 없는 눈물이 뜨거웠다. 초반엔, 영화의 감독이자 동생 닉 역을 맡은 베니 사프디의 지적장애인 연기가 너무 좋아서 패틴슨의 ‘장고 끝 악수’인가 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당시 칸에 온 평론가들 역시 패틴슨의 열연에 엄지를 세웠다.


'테넷'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로버트 패틴슨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테넷'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로버트 패틴슨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코스모폴리스’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때 패틴슨은 ‘뉴욕으로 간 뱀파이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는데, 개봉 후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영화 ‘굿타임’을 통해 뉴욕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명연을 기억하는 장소가 됐다. 기분 좋은 반전이다.


패틴슨은 반전을 좋아하는 걸까. 지난 8월 26일 국내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에서도 반전은 그의 몫이다. 이름 없이 주도자로 불리는 주인공을 연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영화 초반부터 말도 안 되는 액션에 더 말도 안 되는 근육의 힘을 자랑하는 통에 우리의 로버트 패틴슨은 조연인 건가, 주·조연 가리지 않으니 조연 맞나 본데,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시간이 역방향으로 흐르는, ‘되감기’ 세상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주도자보다 많이 알고 있는 건 기본. 사건의 고비, 작전의 위기마다 슬며시 나타나 우렁각시처럼 해결해 주는 닐 역을 그가 맡았다. 영화 마지막, 알고리즘 9개를 모두 맞춘 상황,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은 이제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닐이다. 그리고 홀연히 또 다른 인버전 어딘가로 떠나며 작별을 고한다.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을 기다리며… ⓒ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을 기다리며… ⓒ

닐의 입장에서 ‘테넷’ 속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애잔하기 그지없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주도자에게 발탁된 닐은 시간의 회전문을 타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상으로 건너간다. 원하는 시간대로 뽕 이동하는 게 아니기에, 인버전 세상의 규칙대로 시간이 되감겨지기를 기다려 목표 시점에 도달하고 미션을 수행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순방향으로 흐르는 세상으로 인버전 해 오면, 자신으로선 ‘과거’의 시간이다. 그때부터 다시 평범한 우리처럼 삶을 살다가 상황의 필요와 책임감에 근거한 판단에 따라 시간 역방향 세상으로, 다시 순방향 세상으로 인버전을 거듭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처음 주도자를 만났던 닐 기준의 ‘현재’로 가는 건 요원하다. 닐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느낌일까, 공간은커녕 시간에도 정착할 수 없는 삶은 얼마나 쓸쓸할까. 로버트 패틴슨, 그의 연기로 세상에 나온 닐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다. 동시에 연기 신인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하기엔 벅찬 ‘감성 전달자’의 역할이 로버트 패틴슨에게 맡겨진 이유기도 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울 그 날을 앙망한다. ‘배트맨’의 촬영이 재개돼 로버트 패틴슨이 표현하는 ‘새로운 감성’의 브루스 웨인과 고담시의 박쥐인간을 보고 싶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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