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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⑪] 상태-종태 ‘2태’ 오정세로 행복했던 여름


입력 2020.08.24 19:00 수정 2020.10.04 10:2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연기가 느껴지지 않는 연기, ‘사이코지만 괜찮아’ 문상태

뱀의 차가운 표피가 당신을 감쌀 때, ‘모범형사’ 오종태

상태-종태 덕에 행복했던 여름, 반가운 재회 기대

문상태와 오종태 ⓒtvN, JTBC 제공 문상태와 오종태 ⓒtvN, JTBC 제공

마음대로 호를 지어 봤다. 2020년 여름,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배우 오정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상태, 종태, ‘2태’ 오정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만 만났어도 엄지를 세웠을 것이고, ‘모범형사’의 오종태만 봤어도 그 조용한 잔인함에 흡족했겠지만 오정세가 세상에 내놓은 두 인물을 함께 만나고, 연이어 만나서 행복했다.


상태를 먼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사랑이 비워진 자리를 종태가 채웠다. 두 캐릭터를 동시에 만나는 양다리의 꿀맛도 느꼈다. 이제 내일이면 정태와도 마지막이지만, 아쉽지 않다.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작품을 남겨 줬으니, 이제까지 그래왔듯 배우 오정세는 서둘러 뛰지 않고 게으름피우지도 않고 좋은 캐릭터들을 우리에게 꾸준히 선물할 테니, 웃으며 보낼 수 있다.


준비된 배우, 오정세 ⓒtvN 제공 준비된 배우, 오정세 ⓒtvN 제공

‘사이코지만 괜찮아’에는 연기 잘한 배우가 너무 많았다. 조금은 독특한 이야기로 사람 사이의 온기를 데우는 조용 작가의 극본에, 신선한 영상과 실험적 영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박신우 감독의 연출이 잘 깔아 놓은 판 위에서 배우들이 신명 나게 놀았다. 김수현, 서예지, 장영남, 김창완, 김미경, 강기둥, 박규영, 김주헌, 워낙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지만 이번엔 더욱 빛났다. 장영남이 보여 준 여자배우 판 조커 연기, 갓 지은 밥 내음 나는 푸근한 김미경의 연기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오정세를 최고로 꼽고 싶다. 발달장애, 자폐를 지닌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시청자 눈에 가장 띈다는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시청자는 어느 캐릭터를 볼 때보다 준엄한 잣대로 그 연기를 분석하고 평가한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먹기에 십상인 캐릭터다. 문상태를 연기한 오정세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켰다. 자폐아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상태였다. 조용 작가에 따르면 오정세는 틈만 나면 발달장애 분들이 있는 곳에 가서 함께 놀았다. 연기의 재료로 관찰한 게 아니라 어울렸다. 그렇게 문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친구" ⓒ배지수 씨 SNS "우리는 친구" ⓒ배지수 씨 SNS

문상태 연기의 진정성은 발달장애를 지닌 배범준 씨와의 놀이공원 데이트로 다시금 확인됐다. 문상태가 우는 모습을 보고 위로해 주고파 하는 오빠, 같이 캠핑카를 타고 싶다며 노래 부르는 오빠를 위해 동생 배지수가 오정세 측에 연락해 성사됐다. 현실 만남도 놀라운데 오정세는 문상태 모습으로 나와 극중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배범준 씨와 놀이기구도 타고 대화를 나누며 집중했다. 배지수 씨는 그런 오정세를 보며 “이런 사람도 있구나” 감탄했다. 감사한 마음에 SNS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되자, 오정세는 전화를 걸어 비연예인인 남매의 일상을 걱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움의 연속인 것은 차치하고, 좋은 배우가 자라는 토양이 좋은 인성임을 오정세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리 없이 강하다 ⓒJTBC 제공 소리 없이 강하다 ⓒJTBC 제공

‘모범형사’에도 좋은 배우가 참 많다. 우직한 원칙주의와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발산할 줄 아는 손현주 배우야 말하면 입 아프고.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나 눈을 크게 뜨게 만든 장승조, 대중에게 눈도장 받은 시간 대비 빠르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지승현과 이엘리야, 신선함으로 강한 매력을 발산한 백은혜와 이하은. 팀장 조희봉부터 차래형, 정순원, 김지훈은 물론이고 막내 김명준까지 사랑스러운 강력2팀 식구들. 귀여운 서장 손종학과 얄미운 양현민. 조재윤은 깡패 연기 말고도 잘한다는 걸 보여주었고, 악당 조재룡마저 저음의 목소리가 멋졌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어떻게 살 것인가’의 화두를 던지는 최지원 극본, 조남국 연출의 깊이 있는 메시지를 배우들이 시청자에게 잘 배달했다.


청문담당관실 신동미, 법무부 장관 조승연마저 겉으론 냉정해도 속으론 성공욕에 불타는 이 드라마에서 오정세는 극의 80%가 흐르도록 차가웠다. 목소리 한 번 높인 적 없고 표정 하나 평정심을 잃은 적이 없다. 들끓는 화에 한 손으로 펜을 구부리고 부러뜨리며 피를 흘릴지언정 눈은 먼 곳을 응시했고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급이 다른 소시오패스 오종태를 배우 오정세는 입조차 크게 벌리지 않으면서, 목에 힘 한 번 안 주고 조용하게 뱉었다. 차가운 뱀의 표피가 몸을 감싸는 듯한 연기. 드라마를 보며 오정태 언제 나오지, 기다렸다.


"40년 하면 되겠지" 생을 건 연기 ⓒJTBC 제공 "40년 하면 되겠지" 생을 건 연기 ⓒJTBC 제공

배우 오정세는 한 장면에 대해 10가지 버전을 준비하는 배우다. 처음엔 그중에 한두 가지만 꺼내 보이는 게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열 중 한둘을 고르는 건 감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쓰일지 쓰이지 않을지 모르는 버전을 몇몇 장면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다. 오정세는 그렇게 대본을 파헤치고 캐릭터를 연구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24년째 배우 일을 해오고 있다. 이런 오정세에 대한 팬들의 인정은 진작에 시작됐지만, 이번 여름과 같은 열렬한 박수는 처음인데, 너무 늦었다.


때늦은 박수가 아쉬운 건 배우 오정세를 일찌감치 알아본 팬들이지 오정세 자신은 아닐지 모른다. 그는 왓챠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무명시절을 견딘 건 배우로서의 자신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배우가 될 수 있겠지, 한 40년 잡고 시작했어요”, 뭉클했다. 은근과 끈기를 갖춘 배우인 줄은 알았지만, 그 지구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가뭄 끝 단비 같은 배우, 오정세 ⓒtvN 제공 가뭄 끝 단비 같은 배우, 오정세 ⓒtvN 제공

지난날을 되짚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흔히 조연을 주로 맡다 주연을 한 번 하면 그다음부터는 주연 아니면 하지 않으려는 배우들이 종종 있었고, 그 결말은 좀처럼 다시 보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려 하고, 위로는 가도 다시 아래로 못 가는 건 너무나 인간적 모습이지 비난거리도 안 된다. 그런데 오정세는 배역이 커져도 성급함이 없었다. 주연했다가 언제든 다시 조연으로 돌아갔고, 늘 배우 개인으로 인상적이면서도 작품의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와 ‘모범형사’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도, 함께한 조용 작가로부터 “작가를 성장시키는 배우, 어른으로서 존경스럽다”는 찬사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오정세는 “이제 반쯤 왔다”고 말한다. 어쩌면 배우 오정세로서의 목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높은 태산인지 모르겠다. 오정세는 일정한 속도로, 심호흡하며 경치도 보고 옆 사람도 챙기며 등산을 즐기고 있다. 아니면 그는 그저 그게 산이든 들이든 ‘배우 인생’ 행로 따라 이어지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어도 좋다, 부디 멀리 가지 말고 곁에 있기를, 함께 늙어가기를 바란다.


왜, 오정세는 녹록지 않은 우리 삶에 단비 같은 ‘반가움’을 주는 배우니까. 우선 오늘도 행복하다, 오늘 밤도 오종태를 만날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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