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주의 차별, 세대 전반에 퍼져
언론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눈살
"나는 내 나이를 기사를 보고 안다. SNS에 사진을 올리면 '엄정화, 50대 맞아?'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온다. 30대 중반부터 계속 이런 기사를 접했는데 나이 든 걸 창피해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tvN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에서 친구 이소라와 대화하면서 고백한 내용이다. 엄정화는 영화 인터뷰에서도 나이 얘기를 언급했다. 연예계 활동하면서 매 순간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말이다.
엄정화의 말에 적잖은 이가 공감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빠른년생'을 따지며 서열을 정하는 광경은 꽤 익숙하다. 나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역시 뿌리 깊게 존재한다. 나이가 어리면 뭘 모른다고 무시하고, 많으면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다. 특정 나이에 대한 편견은 수도 없이 들었다. 여성과 남성 모두 '결혼 적령기'를 넘으면 노처녀, 노총각으로 낙인찍히며 "왜 결혼 안 해?"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그 나이 먹도록 이룬 거 없이 뭐 했느냐"는 뼈아픈 말도 무심코 뱉는다.
노인을 향한 편견은 더 아프다. 나이가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노인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친다. 이렇다 보니 노인들 스스로 나이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의 나보다 못할 것 같다는 걱정거리도 생긴다. 더 나아가선 나이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세대 간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편견과 고정 관념을 걷어내야 하는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오히려 나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동시에 '나이 듦'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특히 대중에 노출된 연예인 나이에 대한 잣대는 더 가혹하다. 엄정화 같은 여성 연예인에게 가하는 외모 지적이 그렇다. 주름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등 나이에 따른 외모 기준을 정해놓는다. 나이에 어울리는 역할과 능력을 구분하기도 한다. 어떤 배우의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는 배우의 나이를 내세우며 '무리수 캐스팅'이라고 지적한다.
연예인의 근황 사진을 다룬 매체들의 기사 제목은 더 심하다. '40대 애 아빠 맞아?', '믿기지 않는 50대 유부녀 몸매' 등 나이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40대 아빠는 어떻게 보여야 하고, 50대 유부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조회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곤 하지만 볼 때마다 씁쓸하다. 나이 차이가 나는 연예인 커플의 결혼 기사 제목도 눈에 띈다. '무려 20살 차이 커플', '연하남 낚는 능력녀' 등 연하의 연인과 결혼하면 '능력 있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평가받는다.
미디어가 드러내는 이 같은 편견은 연예인 스스로 위축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나이를 신경 쓰다 보면 도전하고 싶은 것에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엄정화 역시 그랬다. "28, 29살부터 이제 발라드 가수로 바꿔야 한다", "그 나이에는 춤추면 안 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을 부르짖지만 나이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썩은 뿌리를 쉽게 뽑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에 대한 편견과 기준을 '만만한' 연예인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댄다. 누군가 당신에게 '나이'를 언급하며 "그건 아니다", "못한다"라고 단정하면 어떨까. 사람의 가치를 단지 나이로 재단하는 폭력적인 편견을 이제는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