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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선한 의지가 사람 잡는 세상


입력 2020.08.11 09:00 수정 2020.08.11 08:21        데스크 (desk@dailian.co.kr)

듣기 좋은 '선한 의지'가 가져온 악한 결과...소득주도성장.부동산법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생각도 의지도 변하기 마련

통치자는 '선한 의지'로 평가받을 수 없어...오로지 '결과'가 말해

ⓒ청와대 ⓒ청와대

‘악마는 선한 의지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곧잘 인용되는데 인간의 불완전성을 지적한 통찰이 비범하다.


통치자의 선한 의지보다는 제도와 절차에 따른 지배가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세상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통치자의 불완전한 의지를 배제하고 권력 분립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예측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다만 인간이 할 일이다.


얼마 전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급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딱 그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제도와 절차에 따른 법의 지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한 의지로 나라를 지배하고 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보는 바이다.


‘악마는 선한 의지에 있다’라는 말이 경제만큼 딱 들어맞는 것도 없다. 예나 제나 국가주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사악하기 때문에 선한 의지를 가진 권력이 시장을 대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시장의 산물인 가격에 대해서 냉철한 이성과 억센 의지로 이를 통제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자본가와 이와 결탁한 위정자들의 음모이니 이를 분쇄하는 ‘선한 의지’만이 경제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경제에서 ‘시장을 대신하는 선한 의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는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을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복잡해 보이지만 그 주의 주장은 단순하다. 시장에서 형성된 국민들의 임금이 너무 낮고 부당하게 책정되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정권이 국민에게 소득을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광범위한 증세와 무차별적인 보조금 살포도 추진되었다. 한술 더 떠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선한 의지가 경제를 살릴 거라 장담했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생산이 늘고 생산이 늘면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느는 경제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 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총고용을 줄였고 이에 따라 총소득, 총소비, 총생산, 총고용, 총소득이 주는 경제악순환이 현실화되었다. 말이 마차를 끄는 것이 아니라 마차가 마를 끄는 것처럼 정권의 선한 의지가 경제를 어떻게 망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가 되었다.


‘선한 의지’의 또 다른 희생양은 잘 알다시피 경비근로자와 시간강사이다.


2015년 경비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 100%를 지급하는 법률이 시행되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보다 적은 돈을 받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며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정의당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전문가들은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량 해고가 있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과는 대다수 아파트들이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실제 대량해고가 발생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매몰찬 인심을 탓했지만 그것이 ‘선한 의지에 대한 시장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책임지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강사법은 작년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학이 강사에게 1년 이상 전임교원 자격을 보장하고, 방학 중에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강사에게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을 보장하고, 강좌 수와 관계없이 퇴직금도 지급하도록 했다. 늘어난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대학 몫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십억 원의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된 대학은 강사를 줄이는 한편 강사법 적용을 피해 갈 수 있는 초빙교원과 겸임교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2학기 초빙교원과 겸임교원을 합한 수는 전년 동기 대비 7000명 이상 늘어났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간강사법이었나.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선한 의지’ 관련 법안과 정책이 줄줄이 대기 중에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언급한 소위 공정3법인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 이외에도 대·중소기업 상생법, 유통산업 발전법 등이 그것이다. 이미 통과한 임대차3법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 법률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시중에 넘치는 유동자금을 ‘선한 의지’가 모인 곳으로 몰아주어 경제도 살리고 국민도 이익을 보게 하겠다는 뉴딜펀드 정책도 밀어붙일 태세다. 모두가 문재인 정권의 ‘선한 의지’의 발로이다. 그러나 당장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선한 의지가 정작 임차인을 어떤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통치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선한 의지로 평가받을 수 없다. 오로지 결과로 평가받을 뿐이다. 선한 의지가 평가받을 수 있는 경우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전문가와 당사자들의 숱한 견해를 수렴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는 데서 시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때 기꺼이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할 용기를 낼 때에만 “실패는 했지만 의도는 좋았지”라는 말을 들을까 말까이다. 하물며 실패가 분명해졌는데도 인정하지 않거나 의도는 좋았지 않느냐고 우기면 역사는 그를 ‘나라와 국민을 배신한 자’로 기록할 것이다.


ⓒ

글/ 김용태 전 국회의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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