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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⑨] 뜨거운 눈물을 부르는 진심연기, 황정민


입력 2020.08.04 11:27 수정 2020.08.09 19:3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인남의 진심어린 기도

연극 ‘오이디푸스’, 연기 자체로 관객 무장해제 시켜

영화 ‘너는 내 운명’, 석중의 진심에 대한민국이 울어

배우 황정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황정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을 하루 앞두고 있다. ‘신세계’의 황정민-이정재 배우가 7년 만에 다시 만나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스타일 좋은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완성됐다는 평가 속에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 악’, 감독 홍원찬,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황정민이다.


‘신세계’가 이자성(이정재 분)의 영화였다면, ‘다만 악’이 인남(황정민 분)의 영화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추격자’에서는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 분)의 차번호 “4885”를 부르며 쫓는 엄중호(김윤석 분)의 발길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다만 악’에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태국으로 이어지는 인남의 행로를 따라 영화가 움직인다. 또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다만 악’은 그 장면을 위해 달렸고, 그 장면의 주인공은 인남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국정원에서 버림받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쿄로 가 킬러가 된 사나이. 정상급 킬러로 숱한 돈을 벌었지만 인남의 삶은 공허하다.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직 전 마지막 ‘작업’을 수행하는데, 잘못 건드렸다. 타킷에게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형의 복수를 즐길 동생 레이(이정재 분)가 있다. 그의 추격을 따돌릴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 잊으려고 애썼던 과거가 인남을 부른다. 피비린내 나는 인생에 끌어들이지 않으려 외면하려 하는데, 잊히지 않는 사랑은 끊어낼 수 없는 족쇄가 되어 인남의 발길을 인천으로 돌린다.


인천에서 마주한 싸늘한 주검, 인남은 누구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러 방콕을 향한다. 살려야 하고, 그에 앞서 보고 싶은 얼굴. 열망이 뜨거워질수록 희망은 멀어져가는데. 한편으로는 레이의 추격을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없을 땐 맞서야 하는 힘겨움 속에서 인남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향해 뛴다. 마침내 마주한 얼굴, 오래도록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인남은 소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아이와 잠시 이별해야 하는 상황.


소녀가 양팔을 벌린다. 납치와 감금, 생사를 오가는 두려움 속에서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아이가 제 마음을 열어 두 팔을 인남을 향해 벌린다. 아이를 바라보다 얼싸안아 올려 앉는 인남. 아이를 안아 올리는 인남의 입은 씰룩거리고, 안고 앉은 두 눈에선 왈칵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찰나의 순간. 인남의 참고 참아온 통제를 벗어난 입술, 누르고 누른 눈물이 솟는 그 순간, 관객 역시 왈칵 눈물이 솟는다.


쫓기는 자이면서 쫓는 자인 인남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쫓기는 자이면서 쫓는 자인 인남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가 드디어 마음을 열었음을 확인하고 호들갑스럽게 아이를 안고, 전형적 아버지의 눈물을 연기했다면, 감동은 없다. 아버지인지 좋은 어른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약자를 보듬어 안는 진심에 뜨거움이 목을 넘어온다. 아이는 아버지를 향해 팔을 벌린 게 아니라, 믿고 싶고 믿어도 된다고 믿어진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안전을 바라며 재회를 기약하는 다짐으로 마음을 연 것이다.


이 장면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건, 이 장면 전에 황정민이 인남의 옷을 입고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동의를 넘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느 배우나 해낼 수 없는 황정민의 진심연기 덕분이다. 그 씰룩거림, 그 그렁그렁 반짝이는 눈물은 흉내 내기 어렵다. 황정민을 캐스팅했어야 하는 이유다.


연극 '오이디푸스' 캐릭터 컷 ⓒ제작 샘컴퍼니 연극 '오이디푸스' 캐릭터 컷 ⓒ제작 샘컴퍼니

지난해 2월, 연극 ‘오이디푸스’를 보았다. 자신이 배우로서 나고 자란 고향을 잊지 않고 꾸준히 연극작업을 하는 황정민은 당시 ‘오이디푸스’ 공연에 한창이었다. 어릴 적부터 읽고 듣고 보아서 잘 아는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토록 울게 될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을 오이디푸스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왜 울었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명확한 건 비극적 스토리나 오이디푸스의 천형과도 같은 운명에 운 게 아니었다. 자신은 없지만 잘 표현해 보자면, 온몸을 바쳐 연기하는 무대 위의 황정민에게서 뜨거운 불덩이가 포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터져 나왔고 그 한 방을 맞았다. 너무 뜨거웠고 가슴속이 불타는 듯 미칠 것 같았다. ‘아, 아무 이유 댈 것 없이 연기 그 자체, 연기의 뜨거움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있구나,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를 내가 오늘 만났구나’, 멍했다. 황정민이었다.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나니 마음속이 시원했다. 카타르시스라는 게 있다면 이것일까. 황정민은 그렇게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는 연기를 할 줄 안다. 좀 멀리 생각을 뻗쳐보면, 15년 전 영화 ‘너는 내 운명’도 그랬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은하와 석중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은하와 석중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친구 재호네 목장에서 일하는 노총각 석중. 한 마리뿐인 젖소 ‘목장이’를 키우며 통장 5개를 채우며 언젠가는 내 목장도 갖고 예쁜 색시와 하나뿐인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착실한 총각. 장가가려고 필리핀도 다녀왔지만 불발. 어느 날 스쿠터 타고 가는 아가씨, 동네 순정다방에 새로 온 레지 은하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은하는 낮에는 티켓다방, 밤에는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거친 생에 부대끼는 중. 그런 은하가 안쓰러워 석중은 티켓 끊어놓고 자기가 커피 타 주며 편히 쉬었다 가라고 시간을 벌어 주고 아침마다 갓 짠 우유와 장미, 스포츠신문을 놓고 가고 몸 좀 아끼라며 없는 형편에 돈다발을 내민다.


그런 석중의 진심, 평생 받아본 적 없는 호의와 보살핌에 은하는 마음을 열어 둘은 평생을 기약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큰 고무대야에 함께 목욕도 하고, 매화 꽃잎 날리는 농장 산책도 하고. 살뜰하게 살림하는 은하의 맛난 반찬에 밥도 먹고 어머니 여행도 보내드리며 평범해서 더 행복한 일상이 흐르는데.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은하를 전옥분이라 부르는 남자가 석중을 찾고, 석중은 ‘목장이’까지 팔아 돈을 건네고 남자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자신 역시 ‘나 김석중은 전옥분을 죽을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겠음’이라는 다짐을 큼지막하게 쓴다. 하지만 주변을 서성이며 은하를 협박하는 전 남편. 은하는 자신 때문에 석중이 전 재산을 처분했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는 게 석중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성 들여 밥상 차려 놓고, 속인 건 미안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편지를 써놓고 떠난다.


대한민국을 울린 석중의 진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한민국을 울린 석중의 진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은하가 모르고 떠난 게 있었으니, 에이즈에 걸린 상태다. 석중은 그런 은하를 찾아 1년을 전국을 떠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에이즈에도 몸을 팔다 구속돼 있다는 것. 구치소를 찾아간 석중.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유리창 너머 은하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느라 전전긍긍, 책상을 오르락내리락. 각서를 보여 주며 눈물의 호소를 하는데.


이 장면에서 울지 않은 이가 있을까. 세상 저 낮은 곳, 시궁창에서 뒹구는 여인을 세상 가장 귀한 보석 모시듯 사랑스럽게 대하는 남자. 이해돼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는 석중의 진심을, “너는 내 운명”이라 믿는 석중의 마음을 그냥 믿어 주고 지켜 주고 싶은 마음에 철철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 석중과 은하와 함께 통곡했다.


'다만 악' 촬영현장에서 활짝 웃는 황정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다만 악' 촬영현장에서 활짝 웃는 황정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가 황정민 배우를 알기 전, 서울 대학로에서 발견한 얼굴이 빨간 배우를 향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멋쟁이 대학생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후 결혼했고 아내는 뮤지컬 제작자이자 연예기획사 대표로, 남편은 뜨거운 눈물을 부르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중심을 잡아 주는 김미혜 대표가 있어 배우 황정민이 더욱 굳건하게 데뷔 27년 차 오늘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황정민은 현재 요르단에서 배우 현빈, 강기영과 함께 임순례 감독이 연출하는 ‘교섭’을 촬영 중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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