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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⑥] 데뷔 25년차 이정현, 스캔들 한번 없었던 비결


입력 2020.07.23 13:00 수정 2020.08.09 19:3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꽃잎’으로 1996년 데뷔, 올해 ‘반도’까지 순항

가수로서 중국까지 영역 확장 ‘한국의 레이디 가가’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가수-배우로 ‘이유 있는’ 성공

배우 이정현 ⓒ 사진제공=NEW 배우 이정현 ⓒ 사진제공=NEW

“배우로 시작했다가 내리막, 가수로 잘됐다가 또 내리막, 어쩌다 중국에서 한류가수로 불리다가 다시 내리막. 업 앤 다운(up and down)이 심했어요.”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 제작 ㈜영화사레드피터, 배급 ㈜NEW) 인터뷰에서 이정현의 말을 들으며 의아했다. 1996년 열일곱의 나이에 영화 ‘꽃잎’으로 강렬하게 데뷔한 뒤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군함도’를 거쳐 2020년 ‘반도’에 이르기까지 맡는 배역마다 인상적 연기를 펼쳤던 배우이자 ‘와’ ‘바꿔’ ‘반’ ‘줄래’ 내놓는 곡마다 노래뿐 아니라 분장쇼라 불릴 만큼 획기적 의상과 소품, 화장과 안무로 화제를 모았던 가수였던 그에게 부침이 있었던가. 중국에서도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진정 스타이자 주연으로 ‘한국의 레이디 가가’로 자리매김했던 이정현 아니던가.


인터뷰를 준비하며 가장 궁금했던, 질문지에 ‘어린 시절부터 활동한 연예인들의 현주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참 탈 없이 순항했다. 비결은?’이라고 적었던 질문을 바꿔 물었다. 그렇게 굴곡이 많았는데, 봉우리가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이라 더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스캔들 한번 없이 25년을 활동할 수 있었나요?


“다 내려놓으면 돼요. 취미 생활이 위로가 되고, 가족들이 힘이 되고, ‘한국인의 밥상’ 매번 보는 프로그램인데 음식 다큐멘터리 너무 좋아하고. 최고는 ‘엄마 밥’이에요. 엄마의 칼질, 도마 소리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엄마가 양푼에 밥 비벼 주고 이러면 힘든 거 잊고 위로됐던 것 같아요.”


“지금 역시 내려놨거든요. 기대하는 걸 내려놓는 법을 배우니까 맘도 편해지고, 내가 좋아하는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그러다 졸은 일 생기면 두 배로 기쁘고요. 본인의 꿈을 내려놓으라는 게 아니라 업 앤 다운이 심하니까 연예계가, 어려서 시작하는 친구들 많이 내려놨으면 좋겠어요.”


“취미 찾는 게 중요해요. 저는 요리로 풀어요. 음식해서 좋아하는 사람 부르고, 그분들이 좋아하면 제가 좋더라고요. 같이 수다 떠는 게 좋더라고요. 여름엔 카레, 겨울엔 곰탕.”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엄마의 칼질이 도마와 만들어내는 소리에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성장한 딸은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나눈다. 선순환이다.


영화 '꽃잎' 스틸컷 ⓒ 대우시네마 배급 영화 '꽃잎' 스틸컷 ⓒ 대우시네마 배급

영화 ‘꽃잎’ 얘기부터 차근히 들어보자. 개봉 당시 17세, 어디서 이런 ‘미친 연기력’을 소유한 배우가 나왔나, 경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기파 배우 문성근 옆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때는요 연기를 하나도 몰라서, 배운 것도 없어서 첫 촬영 때 그 무서운 장선우 감독님한테 대본으로 혼나며 촬영을 접었어요. 정신 나간 연기, 어떡하는지 몰라서 촬영하던 그 동네를 정신 나간 애처럼 돌아다녔어요. 제작부 언니가 찾으러 오고. 몸에 상처 나면, 아프면 그걸 어떻게 연기할지 몰라서 (촬영 전에) 상처도 내보고…. 지금은 나이 들고, 보는 것도 많고, 감성 풍부해진 것 같아요.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현대사의 비극을 겪고 충격과 혼돈 속에 정신 나간 소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아예 정신 나간 동네 아이가 되고, 극의 내용상 소녀의 몸에는 상처 날 일도 많은데 상처가 났을 때의 상태와 아픔을 연기로 어떻게 표현해야 진짜 같아 보이는지 몰라 진짜 상처를 냈던 열일곱 이정현. 10대다운 순수한 접근이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버거운 그 치열한 고뇌가 느껴져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가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가수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이정현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배우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가수, 즐기면서 했어요. 분장도 직접 다했죠. ‘와’ 할 때, 가끔 소품 없으면 일테면 비녀 없으면 나뭇가지 꺾어서 색칠해서 쓰거든요. 그런 작업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런데 기획부터 프로듀서, 콘셉트부터 소품까지 스스로 해야 하니까, 없으면 만들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지치더라고요.”


“영화배우가 너무 좋은 게 연출 감독님이 계시고, 미술만 봐도 미술팀과 미술감독님이 계시고. 최고의 스태프, 전문가가 모여서 다해 주시니까 저는 캐릭터에만 빠져서 연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좋아요. 연상호 감독님은 핸들 돌리는 표정까지 다 시연해 보여 주실 정도라니까요(웃음).”


영화 '반도' 스틸컷 ⓒ 사진제공=NEW 영화 '반도' 스틸컷 ⓒ 사진제공=NEW

영화 ‘반도’에서 이정현이 연기한 ‘민정’은 좀비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두 딸을 탈출시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이다. 자식을 위한 일이다 보니, 고개만 돌리면 좀비이고 희망을 잃고 좀비보다 잔악하게 미쳐버린 631부대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무서운 전사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그 포스가 가히 여전사라는 말로는 부족한 ‘엄마전사’이다.


“처음에 시나리오 받았을 때 민정의 전투력이 모성으로 생긴 거구나, 바로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평범한 어머니들도 민정처럼 폐허 된 한반도에 잔악한 631부대와 남겨진다면 이럴 것이다, 관객분들도 똑같이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연상호 감독이 말해 준 캐릭터 이름도 잊고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어요. 다 읽고 감독님과의 메신저 대화 찾아보고 ‘민정’이구나, 엄마 역이구나, ‘아, 이 캐릭터 맞네’ 했어요.”


“이레, 예원이 어린이 배우들이 너무 뛰어나서 대본 연습 없이 한두 장면 재연 정도 해 보고 시작했는데 어려움 없이 엄마가 됐어요. 엄마, 엄마 하며 따라다니고 친화력 좋고, 감정연기를 어린 친구들임에도 너무 잘하고. 또 제가 조카가 8명인데 기저귀 갈고 다해서 그런지 준이(이레 분)랑 유진(이예원 분)이가 엄마 같은 마음으로 와 닿았어요.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저런 딸 낳고 싶다(방긋 웃음), 잘 따라줘서 고마워요.”


생존이 우선이고 전기도 물도 끊긴 세상에서 꼬질꼬질한 외모가 당연하지만, 영화는 영화인지라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멀끔하게 나오는 전사들도 숱하다. 소위 ‘떡진’ 머리에 시커먼 얼굴, 아쉽진 않았을까.


“아뇨, 멋져 보이려는 그런 욕심 전혀 없어요. 주근깨도 그려달라 그러고, 피부과가 없을 테니(웃음). 화장품도 못 바를 테고, 더 거칠게 해달라고 오히려 부탁했어요. 그렇게 분장이 완성됐을 때 기뻤어요. 씻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민정의 모습으로요.”

“의상 피팅도 너무나 완벽하게 됐어요. 민정이 입을 옷, 빈티지 풍의 옷들 챙겨갔는데 다 필요 없었어요. 감독님이 비주얼 면에서 대단하셔서, 다 준비해 놔서, 저는 고르기만 하면 됐어요. 신나고 편했고, 그래서 캐릭터에 쉽게 빠져들었어요.”


“일단 연상호 감독님의 현장은 준비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프리프러덕션(사전제작)이미 1년 진행된 상태, 분장 또한 분장실장님과 이미 얘기를 많이 해놓은 상황이더라고요. 현장 가서 이것저것 해 보는데, 우선 미용실 못 가고 못 자른 머리, 머리 못 감고 빗질도 못할 것 같은 상황이라면 실제로도 이렇게 되겠다 예측해서 만들어진 머리이고 외형이에요. 목소리도, 제 목소리가 즐겁고 해피(행복)한 톤이라 일부러 목소리를 눌러서 냈어요.”


'반도' 200만 돌파 감사인사 ⓒ 사진제공=NEW '반도' 200만 돌파 감사인사 ⓒ 사진제공=NEW

이정현이 공들여 만든 민정이 주연한 영화 ‘반도’는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관객들의 발길이 뜸한 극장가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 열심히 했는데 (코로나19 상황에) 마음이 되게 아쉬웠고. 그렇지만 걱정이 더 컸어요, 확진자 줄지 않을까 봐요. 그게 더 우선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정말 방역을 철저히 잘하더라고요, 극장도 잘하고. 같이 좀 안전하게, 많이 보러 와 주셔서 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게 해 주시면 좋겠어요.”


영화산업을 생각하는 마음, 관객의 건강이 우선인 마음, 두 마음 사이에서 조심히 조율하며 얘기하는 이정현의 눈빛과 태도에서 좋은 어른의 심성이 보였다. 같이 사는 또 한 명의 어른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모습에선 오랫동안 톱스타였던 연예인의 스타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당신은 '배우 이정현' ⓒ 사진제공=NEW 당연히 당신은 '배우 이정현' ⓒ 사진제공=NEW

“잘되든 안 되든 옆에 있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든든해요. 일 끝나면 집에 빨리 가고 싶긴 하고요. 죽을 때까지 작품 하고 싶은데, 아기도 낳아야 하는데(웃음). 올해까지는 연기하고, 내년에는 한 번 열심히 (잉태) 해보겠습니다(부끄럼).”


“(스타의식 없는 건) 성향인 것 같아요. 그게 너무 편해요. 스타라고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알아봐 주시면 감사하고, 그런 마음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또 부끄럼).”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그냥 ‘배우 이정현’이요. 당연하게, 배우 이정현.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배우 같은 배우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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