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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의 정치공학] 역사의 법정에서도 이재용은 불기소다


입력 2020.07.01 07:00 수정 2020.07.01 05:06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약자가 아니다?…누구도 인권보호의 열외 아냐

숙지 불가능?…시민 의한 기소통제 취지 오해

여권 일각 논리는 '검찰개혁' 자기모순·자기부정

검찰도 좌고우면 말고 심의위의 권고 수용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여부를 심의하는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여부를 심의하는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것을 놓고 여권 일각이 벌집 쑤셔놓은 듯 소란스럽다.


이 기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으로 현 정부 들어 설치했는데도, 이전 여덟 차례의 권고를 검찰이 따랐을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이제 감놔라 대추놔라 야단들이다. 제도 자체가 검찰의 공소권을 시민이 통제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것인데, 그조차 모르고 '검찰개혁'을 부르짖어 왔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여권 일부 인사들은 △이 제도는 약자 구제책인데 이재용 부회장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 △수사기록만 20만 쪽, 공소장이 150쪽이 넘는 복잡한 사안이라 심의위원들이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 등을 펼치는 것 같다.


첫 번째 주장은 이른바 '언더도그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약자' 구제책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가 가련하다고 해서 기소를 하지 않고 봐주는 제도라면 그런 제도는 법의 세계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검찰의 과잉수사와 기소독점권으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공소권 남용 앞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있지도 않다. 이재용 부회장은 수 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인권 보호를 위한 이 제도 앞에서 이 부회장만 천부인권이 없기라도 한 사람인 것처럼 열외가 돼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연원적으로 보면 형사절차 진보의 역사는 권한의 분리를 통한 상호 견제의 역사다. 전근대 규문주의(糾問主義) 아래에서는 판사와 검사가 분리돼 있지 않았다. 수사해서 기소하고 심문하는 사람이 판결까지 내렸다. 이른바 '원님재판'이다.


고을 관아 뜰 아래에는 피고인이 무릎 꿇려져 있고, 검사이자 판사인 사또는 동헌 마루 위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혐의를 따져묻다가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소리 지르고 "매우 쳐라"면서 판결한다. 심급이 올라가도 형식은 동일하다. 사극에 나오는 국문(鞫問)에서는 최고재판관인 임금이 직접 죄인들의 혐의를 추궁하다가 "사사(賜死)하라"고 판결까지 내린다.


이에 검사와 판사를 분리해 견제하도록 했다. 검찰은 기소를 하고 피고인은 검사에 맞먹는 법률적 지식을 가진 변호사를 선임해 맞선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제3자인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 주장의 당부를 판단한다. 외견상으로는 동등해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변호사는 피고인이 사비로 선임하는 반면 검사가 속해있는 검찰 조직은 국가권력에 의해 운영된다. 기소하는 측은 아무런 개인적인 부담이 없지만, 방어하는 피고인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부담한다.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이미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피고인이 기업인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걸려 있는 기업의 경영까지도 흔들리는 것을 면치 못한다.


이처럼 공소권 남용에 따른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선진국에는 일반 국민에 의한 '기소 통제' 절차가 있다. 미국의 대배심(Grand Jury) 제도가 대표적이다. 무작위로 추첨된 일반 시민이 배심원이 돼 검사의 설명을 듣고 기소 여부를 다수결로 판단한다. 미국 23개 주에서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배심원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평범한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기소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해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도 미국의 대배심 제도와 취지가 같다. 법조계 외에 학계·언론계·시민단체·종교계·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 225인 중에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위촉된 위원들이 수사·기소에 대해 판단한다는 점도 유사성이 있다.


두 번째 주장인 수사기록 20만 쪽, 공소장 150쪽을 운운하며 위원들이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제도 자체를 모욕하는 주장이다. 수사기록과 공소장을 가장 잘 숙지한 사람은 스스로 수사를 해서 공소장을 작성한 검사 본인이다. 이런 논리라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대배심이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 자체를 둘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잘못 낸 것이고, 이 제도를 도입한 현 정부가 정책파탄을 범했다는 논리가 된다.


미국의 일반 시민 무작위 추첨 대배심 제도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 각계각층에서 충분한 경륜과 경험을 갖춘 인재 풀 중에서도 무작위 추첨을 한다. 미국의 대배심 제도보다 더 깊은 고민이 담긴 결정이 도출되는 구조다. 미국 대배심 제도도 잘만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해능력이 떨어져 검찰 공소권에 대한 시민 통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다.


여권 일각에서 지금 쏟아내는 주장들은 검찰 공소권의 민주적 통제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는 논리밖에 없다. 여권이 그간 주장해왔던 이른바 '검찰개혁' 논리와는 완전한 자기모순이다. 규문주의 시대 '원님재판'처럼 '네 죄를 내가 아는데' 왜 내 생각에 유죄인데도 기소를 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생떼밖에는 남은 게 없다.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형사절차 진보의 역사를 부정하고 되돌리려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가소롭다. 검찰은 그야말로 좌고우면 말고 지금까지 그래왔던대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해 불기소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역사의 법정에서도 불기소일 수밖에 없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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