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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편집앨범 권리와 횡포①] 팬들이 걷어찬 음반들


입력 2020.05.26 16:50 수정 2020.05.27 10:46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판권 가진 음반사, 편집앨범 마구잡이 발매

아티스트-음반사 법정분쟁...일부 팬들은 '불매운동'

유희열. ⓒ 뉴시스 유희열. ⓒ 뉴시스

2001년 유희열의 프로젝트 그룹 토이가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자 팬들은 불매운동에 맞섰다. 2003년 '가왕' 조용필의 목소리가 담긴 '그레이트 히트'란 제목의 베스트 앨범 또한 팬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얼핏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지만, 음반사에서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발매하는 편집앨범들은 늘 논란거리였다. 무엇보다 이 앨범들 대부분은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불법 복제 앨범들과 비교될 만큼, 조악한 완성도와 패키지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발매 시기도 문제가 되곤 했다. 조용필이 2003년 18집 앨범 'Over The Rainbow'를 발매하자, 지구레코드는 이에 발맞춰 '그레이트 히트'라는 제목으로 CD 4장짜리 편집앨범을 출시했다. 당시 팬들은 "새 앨범을 선보인 지 하루 만에 말도 안되는 편집앨범을 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토이도 비슷했다. 2001년 토이가 5집 발매를 예고하자, 토이 3·4집 판권을 갖고 있던 E&E 미디어 측이 유희열과 상의 없이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베스트 앨범이라니, 팬들로선 황당한 일이었다. 유희열 측은 "겨우 4집을 낸 젊은 뮤지션인데 베스트 음반이라니"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는 박효신, 엠씨 더 맥스, 라디오헤드, 신승훈, 조성모 등도 경험한 일이다. 그나마 유명 아티스트들은 어디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 아티스트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2010년 이후 음원 시장이 급부상하고 음반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 같은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아티스트 본인은 알지 못하는 베스트 음반들은 심심치 않게 쏟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발매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조용필' '베스트 오브 베스트 남진'과 같은 앨범들이 이에 해당한다. 편집음반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음원 사이트에는 이런 형태의 앨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음원 판매를 통한 수익은 여전히 달콤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앨범에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사운드리퍼블리카 ⓒ 사운드리퍼블리카

이 앨범들은 기존 음반사가 아닌 새로운 유통사를 통해 발매됐는데, 그 이면에 어떤 계약이 이루어졌는지조차 불투명하다. 양측 모두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레코드 측은 해당 음반에 대해 "우리와 무관하다.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고, 음반 유통사인 사운드리퍼블리카도 "지구레코드가 아닌 다른 음원 권리자와 계약해 음원을 유통하고 있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가요 관계자는 "지구레코드나 오아시스레코드는 음반시장에서 활발하게 음반을 유통하는 회사는 아니다. 다만 새로운 편집앨범 발매보다는 음원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편집앨범이 가요계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건 2001년 배우 이미연을 표지모델로 내세운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가 400만 장(100만 세트)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는 음반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수요를 확인한 각 음반 제작사들은 비슷한 형태의 앨범들을 찍어내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음반유통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에서는 "신보 수록곡 음원을 타인의 편집음반 제작에 사용 허가를 해줄 경우 회원자격을 박탈한다"고 결의하며 편집앨범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저작권은 크게 저작재산권(복제권·공연권·공중송신권·배포권·2차적 저작물 작성권), 저작인격권(공표권·성명표시권·동일성 유지권), 저작인접권(실연자·음반제작자·방송사업자 등에게 부여되는 권리) 등으로 나뉘는데 당시 음반 제작사는 사실상 세 가지 권리를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2010년 이후에도 종종 벌어졌다. 지난 2015년 다비치의 전 소속사 MBK엔터테인먼트가 신곡 '이 순간'을 발매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다비치와 당시 소속사 CJ ENM은 "다비치는 원치 않는 음원"이라며 반발했고, MBK엔터테인먼트는 "저작권 및 사용권은 MBK엔터테인먼트에 귀속됐다"며 맞서면서 갈등을 빚었다.


최근엔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음반 계약 시 구체적인 조항을 삽입해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에는 구체적인 조항들을 명시해 그런 문제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과거 잘못된 계약서에 발목 잡힌 가수들은 뒤늦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봐야 큰 소득이 없다는 점이다. 도의적으론 옳지 않다는 음악계의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법적으론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 평론가도 "엄밀히 말해 음반사가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익만을 위해 대충 짜깁기해 앨범이 나오다 보니 작품성을 훼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팬들로선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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