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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서사 중심이 된 여성①] 작품 속 ‘백마 탄 왕자’는 없다


입력 2020.04.22 15:15 수정 2020.04.23 09:26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수동적→주체적 서사로 변모

조이서·정금자·김지영 등 돋보여

'이태원 클라쓰' 김다미ⓒJTBC '이태원 클라쓰' 김다미ⓒJTBC

"다시는 혼자 아프게 두지 않겠다는 생각. 이 남자를 건드는 놈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는 다짐."


지금까지 이런 여성 캐릭터는 없었다. 지난달 인기리에 종영한 JTBC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김다미 분)는 예쁘고, 순종적이길 강요받는 여성 캐릭터를 거부한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조이서는 사랑과 일 모두에서 능동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괴롭히면 그에게 다가가 일침을 내놓는다. 다 죽여 버릴 거라고.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여리고, 예쁜 여성 캐릭터들이 백마 탄 왕자만 기다리는 시대는 갔다. 여성이 곤경에 처했을 때 남성이 슈퍼맨 같이 날아와 힘든 일을 뚝딱 해결하는 시대도 지났다.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가지각색의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변화를 꾀했다. 이전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를 외치는 착하고 씩씩한 캔디형 여주인공이 주를 이뤘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 '미스터 큐'(1997), '토마토'(1999) 등이 대표적이다. 김희선, 신애라 등이 주연으로 나섰지만 캐릭터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수동적인 역할이었다.


2000년대에는 여성 캐릭터가 조금씩 확장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커피프린스 1호점'(2007)에서 김삼순(김선아 분)과 고은찬(윤은혜 분)은 독립적이고 밝은 캐릭터로 그려졌다. 남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모습에서 1990년대 캔디형 주인공과 달랐다. 여성의 사회, 경제적 활동이 증가한 분위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랑, 일, 욕망에 더욱 적극적인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직장의 신'(2013) 속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김혜수 분)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이후 '굿와이프'(2016), '시그널'(2016), '비밀의 숲'(2017), ‘SKY캐슬’(2019), ‘동백꽃 필 무렵’(2019) 등 다양한 직업군과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장르물이 쏟아지면서 여성 캐릭터는 더 다채로워졌고, 서사 역시 풍부해졌다. 이전에는 여성 캐릭터 홀로 서사 전체를 책임지기에 무리였지만 이제는 여성 중심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3일 종영한 SBS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 분)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중심축이었다.


'하이에나' 김혜수ⓒSBS '하이에나' 김혜수ⓒSBS

'아무도 모른다'의 김서형은 경찰 광역수사대 강력팀장 차영진을 맡았다. 사실상 ‘김서형의 드라마’를 이끄는 그는 냉철하고 집념 강한 모습으로 서사를 완성한다.


과거 영화계 역시 남성 서사 중심으로 돌아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씨받이'(1986) 등 수동적이고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여성 캐릭터는 1990년대부터 조금씩 변화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해피엔드'(1999), '바람난 가족'(2003)이 등이 이 시기에 극장에 걸렸다. 이후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왔다. 2008년 나온 '미쓰홍당무'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교사를 내세워 독특하면서 신선한 서사를 완성했고, ‘마더’(2009)는 통념과 사뭇 다른 모성을 보여줬다. 2016년에는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아가씨’ 등이 이전보다 입체적인 여성 서사가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해 여성 서사가 돋보였던 작품으로는 '걸캅스', '벌새', '82년생 김지영' 등이 있다. 젠더 논란까지 일으킨 '걸캅스'는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두 여성 형사가 SNS 성범죄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연 라미란은 올 초 개봉한 '정직한 후보'에서 여성 정치인을 맡아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여성 김지영의 삶에 집중해 공감을 얻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박지후 분)는 여성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4년을 배경으로 14살 은희의 보편적이고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 독립 영화인데도 관객 수 14만 5000명을 동원했다.


'미쓰백'(2018)은 백상아(한지민 분)와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 지은(김시아 분)의 연대를 다뤄 호응을 얻었다.


여성 액션물의 신세계를 보여준 작품도 있다. 2017년 개봉한 ‘악녀’와 이듬해 개봉한 주연의 ‘마녀’다. 김옥빈과 김다미는 강도 높은 액션신을 매끄럽게 소화해 색다른 여성 액션물의탄생을 알렸다.


여성 예능인의 활약도 돋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예능은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 박명수 등 남성 예능인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2018년 이영자가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방송인 최초로 KBS 연예대상을 받았고, 같은해 MBC 방송연예대상까지 수상해 여성 예능인으로는 최초로 연예대상 2관왕을 휩쓸었다. 이영자를 이어 박나래가 지난해 MBC 연예대상을 탔고 김숙, 박미선, 송은이, 장도연 등 개성 넘치는 여성 연예인들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박나래는 지난해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쇼 '농염주의보' 기자간담회에서 "예전보다는 여성 연예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며 "관객들이 남성, 여성을 구분하지 않고 예능인으로 봐주신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방송계에서는 과거보다 소재, 장르, 캐릭터가 다양해지면서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가 변모한 덕에 여배우들이 작품을 선택할 폭이 넓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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