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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백스테이지] 라흐마니노프 삶을 바꾼 '악평과 격려'


입력 2020.04.03 17:26 수정 2020.04.03 19:28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위대한 음악가 슬럼프 그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보편적 질문과 메시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 사진. ⓒ HJ컬쳐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 사진. ⓒ HJ컬쳐

"내가 궁금한 건 당신의 마음이에요. 무슨 마음으로, 사람들이 무얼 느끼길 바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곡을 쓰려는 건지 말해줘야 내가 치료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슬럼프를 겪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에게 던진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1860~1939)의 질문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극 초반부터 계속되는 두 사람의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는 이 장면은, 관객들의 내면까지 순식간에 흔들어놓을 만큼 강렬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아픈 시절을 다룬다. 어쩌면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한 천재의 삶이지만, 이 작품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초연한 교향곡 1번이 평단의 혹평을 받은 후,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당시 작곡가이자 평론가인 세자르 큐이는 이 작품을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에 비유하면서 "지옥에 있는 음악원 동료들이 환영할만한 작품"이라고 악평했다. 당시 23살에 불과했던 라흐마니노프에겐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3년 이상 새로운 곡을 쓰지 못한 채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그 어떤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은둔생활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이 기간에도 피아노 레슨 일을 계속했고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부지휘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런 그를 바꾼 건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 등장하는 달 박사였다. 실존 인물인 달 박사는 1900년 1월부터 4월까지 라흐마니노프를 매일 만나 최면요법으로 그를 치료했다. 당시 달 박사는 끊임없이 "당신은 아주 잘 해낼 것입니다" "당신은 피아노 협주곡을 쓸 것이며 정말 훌륭한 곡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는 라흐마니노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치료는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내 안에서 들끓게 했다"고 회상했고, 우울증을 극복한 후 쓴 첫 번째 작품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달 박사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를 절망 속에 빠뜨린 것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결국은 사람들의 '말' 이었던 셈이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유독 여운이 남는 것도 이 작품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 그리고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달 박사의 진정성 있는 위로는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당신은 이미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든 쓰지 않든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라흐마니노프의 삶을 바꾼 결정적 한마디였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협주곡 2번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실도 맺었다. 그리고 결혼 이후 10년간 그를 대표하는 대작들 대부분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1909년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은 극악의 난이도로 인해 '피아니스트의 무덤'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곡을 연주하다 정신분열 증상으로 쓰러졌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는 훗날 영화 '샤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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