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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웅' 은행 사외이사 멋쩍은 셀프 평가


입력 2020.03.18 05:00 수정 2020.03.17 10:32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내부 설문만으로 지난해 직무 평가 성적 모두 '만점'

외부 평가 조항 유명무실…이어지는 비판 '나 몰라라'

국내 4대 시중은행 사외이사들이 지난 1년 간의 역할 수행 평가에서도 일제히 만점짜리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데일리안 국내 4대 시중은행 사외이사들이 지난 1년 간의 역할 수행 평가에서도 일제히 만점짜리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데일리안

국내 4대 시중은행 사외이사들이 지난 1년 간의 역할 수행 평가에서도 일제히 만점짜리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각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평가가 가능하다는 내부 조항을 마련해 두고도, 하나 같이 자체 설문만으로 이 같은 결과를 내놓으면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사외이사들이 지난 1년 역시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로 일관하면서 거수기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이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력도 만만치 않은 만큼, 이제는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공정한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의 사외이사 총 21명은 얼마 전 실시된 지난해 직무 평가에서 모두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에 근거해 은행들은 사외이사들이 자리를 유지하는데 충분한 자격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했다.


은행들의 사외이사 평가는 통상 세 가지 방식의 설문 조사를 종합해 이뤄진다. 먼저 사외이사가 스스로 자신의 점수를 매기는 자기 평가가 이뤄진다. 이어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외이사 전원을 상대로 성적을 내는 상호 평가, 그리고 사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직원 평가가 더해진다.


다만, 어떤 은행도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외부 평가를 진행한 곳은 없었다. 전 은행이 내부 규범에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전무했다. 사실상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명무실한 시스템인 셈이다.


은행들이 그나마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내부 평가 규정이라도 정해 두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의 주문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발표한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통해 은행 이사회로 하여금 주기적으로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평가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사외이사의 권력화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안일 뿐 강제성이 없는 규율인 탓에 실제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단지 쉬쉬하는 수준을 넘어 사외이사 외부 평가 방안에 은행들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평가 시행을 법률로 못 박으려 하자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은 2018년 사외이사 연임 시 외부 평가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은행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인 은행연합회는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사외이사를 외부에서 평가하도록 하면 이사회 참석률과 같은 단편적 요소만 보게 돼 평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활동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이들이 기업의 입장만 대변하는 거수기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이사들로,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평소에는 자신의 본업에 종사하다 분기에 1회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 경영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제 3자의 시각에서 기업의 경영을 견제하라는 의도에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가 현실에서는 분명히 발휘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해에도 4대 은행에서 69차례의 이사회가 열렸지만, 상정된 안건에 사외이사가 반대 의사를 표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만큼 은행들에서 무리한 경영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의견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로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사외이사들이 은행 권력의 방패막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외부 평가 실시를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다. 사외이사들은 은행장 선출 시 구성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핵심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은행의 편에만 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인 만큼, 은행장 인사에서도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차기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가 돼 버렸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또 다른 외풍에 휘둘릴 수 있다는 은행들의 우려도 납득이 가는 면이 있지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조차 이들에게 직접 코멘트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가뜩이나 배타적인 금융권 문화 속에서 사외이사가 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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