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엑시트, 모처럼 단숨에 달린다


입력 2019.09.02 08:20 수정 2019.09.02 08:17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관객의 요구에 맞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승자 만들어

<하재근의 이슈분석> 관객의 요구에 맞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승자 만들어

ⓒ데일리안 ⓒ데일리안

(스포일러 있음) ‘엑시트’가 의외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900만 고지를 넘어가고 있다. 뒷심만 받쳐준다면 천만 흥행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다. 신인 감독에, 주연인 조정석과 임윤아도 영화계에서 그렇게 존재감이 크지 않기 때문에 ‘엑시트’는 여름 블록버스터 치고는 약체처럼 느껴졌었다.

그나마 이 작품이 코미디라고 알려진 점이 기대할 만한 대목이었다. ‘극한직업’의 심상찮은 흥행이나, 드라마 ‘열혈사제’의 인기가 말해주듯 요즘 우리 관객들이 가벼운 코믹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막상 공개된 ‘엑시트’는 그렇게 성공적인 코미디가 아니었다. 웃기고자 하는 의도는 느껴지는데 그렇게 팡팡 터지진 않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않았던 지점이 있었다. 바로 단숨에 달린다는 점이다.

작품은 간단하다. 가스가 터지고 주인공들은 건물에서 탈출해 가스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한다. 복잡한 보조 스토리가 없고, 중간에 곁길로 새지도 않는다. 보통 블록버스터들이 중반 휴지기 이후에 다시 시동을 거는 데에 반해 이 작품은 한 호흡에 쭉 간다. 복잡한 인간군상도 없다. 그저 주인공들이 탈출할 뿐이다.

이게 통쾌했다. 과거엔 오락영화 상영시간이 90~100분 정도였는데 요즘엔 2시간 이상이 부지기수다. 그 안에 다양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집어넣는다. 집단 주연이 많아졌고 영화내용이 복잡해졌다.

재난 영화의 경우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양한 각자의 사정과 욕망 속에서 저마다의 행동을 하는 모습이 보통 그려진다. 그 안엔 이기적인 사람, 사악한 사람도 있고 불쌍한 사람도 있고, 민폐만 끼치는 사람도 있다. 재난이 터지고 수습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욕망도 드러나고 공권력의 무능도 드러난다. 때로는 사람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는 권력의 비정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안타까운 사연이나 희생의 설정을 통해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도 한다. 이러니 2시간도 부족하다.

‘엑시트’는 이 모든 걸 날려버리고 주인공들의 탈출이야기로 단순화했다. 상황이 발생하고, 주인공들은 오르고 달린다. 그게 끝이다. 이게 최근의 무겁고 복잡하고 긴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오락영화로서의 쾌감을 줬다.

또, ‘엑시트’엔 예기치 않았던 강점이 있는데 바로 액션이다. 웃기는 영화인 줄 알고 상영장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였다. 건물 타는 장면이 정말 관객을 긴장시킨다.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등반으로 이렇게 사람을 긴장시킨 적이 없었다. 한국 영화 등반 장면의 신기원이다.

시원시원한 달리기도 호쾌하다. ‘캡틴 마블’과 같은 그래픽 범벅 영화가 주인공의 답답한 달리기로 관객에게 고구마를 선사했는데, 조정석 임윤아가 막힌 속을 뚫어준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화면에서 몸 쓰는 걸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 받은 건 흔치 않은 자산이다. 아이돌 출신 중에서 경쟁력 있는 액션 배우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재미의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극한직업’과 통한다. 어쨌든 대중은 경쾌한 오락물을 원하는 것 같다. 무겁거나 감동적인 작품들을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이미 충분히 무겁기 때문에 가벼운 오락물로 잠시나마 위안 받으려는 심리도 있다. 그런 관객의 요구에 맞는 단순한 오락영화라는 점이 ‘엑시트’를 올 여름 극장가의 승자로 만든 셈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하재근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