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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파업 자제" 뒷북…말리는 총리가 더 밉다


입력 2019.08.07 11:14 수정 2019.08.07 13:56        박영국 기자

완성차 노조 7월 중순부터 파업 예고했는데…'뒷북'

노조 의식해 사측에 "전향적 협상" 언급하며 양보 압박

완성차 노조 7월 중순부터 파업 예고했는데…'뒷북'
노조 의식해 사측에 "전향적 협상" 언급하며 양보 압박
문재인 정부‘위기 발생 후 뒷북 수습’패턴 반복


6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청사간 영상국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이낙연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청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6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청사간 영상국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이낙연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청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이 있다. 겉으론 위해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어차피 한통속이란 의미다.

말릴 생각이었으면 때릴 기미가 보이기 전에, 적어도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말렸어야 한다. 이미 주먹이 코앞에 와 있는데 옆에서 말리는 시늉만 하는 게 맞는 사람 입장에서 달가울 리 없다.

지난 6일 완성차 노동조합에 파업 자제를 ‘부탁’한 이낙연 총리의 태도가 딱 그렇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총리는 “내외 경제여건이 엄중한 터에 일본의 경제공격까지 받고 있다”면서 “노사의 대립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완성차 노조에 당부했다.

문제는 완성차 노조의 파업 움직임이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있어왔다는 점이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려면 사전에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사측과 교섭 결렬을 선언해 명분을 만든 뒤,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한다. 약 열흘 간의 조정기간 동안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조정 중지 결정이 나오면 파업권을 무기로 사측을 다시 한 번 압박한 뒤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돌입한다. 이 과정이 길게는 한 달 가량 걸린다.

‘파업 사전절차’의 첫 단계인 교섭 결렬 선언은 현대차 노조가 지난달 19일에 스타트를 끊었고, 기아차 노조가 23일 뒤를 이었다. 한국GM 노조는 다소 늦은 25일 교섭 결렬을 선언했지만 이들은 교섭 시작도 전에 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하며 일찌감치 파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상태였다.

완성차 노조가 여름휴가가 끝나는 이달 중순부터 줄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대차 노조의 교섭 결렬 선언이 있었던 지난달 중순부터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넘버 투’로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하는 국무총리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당장 닷새 뒤면 완성차 업체들이 여름휴가를 끝내고 조업을 재개한다. 더불어 완성차 노조의 파업 움직임도 본격화될 것이다. 이미 파업 사전절차를 마무리해놓은 노조가 막판 총리의 말 한마디에 파업 의지를 접을 리 없다.

올케가 맞을 상황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 놓고 있다 주먹이 코앞까지 가자 뒤늦게 말리는 시늉만 하는 형국이다.

더 얄미운 시누이는 맞을 상황에 놓인 올케에게도 한마디 한다. 이 총리는 노조에 파업 자제를 당부함과 동시에 사측에도 “전향적으로 협상에 임해 해결책을 함께 찾아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파업으로 피해를 보기 싫으면 양보안을 내놓으라는 소리임과 동시에, 파업 사태가 벌어지면 사측에도 책임이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파업 사태의 파장이 커질 때마다 사측의 양보를 강요해 지금의 귀족노조를 만든 정부의 케케묵은 ‘파업사태 해결 매뉴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문재인 정부 들어 ‘위기 발생 후 뒷북 수습’은 늘상 이어져 오던 패턴이었다. 완성차 노조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발언 역시 타이밍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늦었으면 강력한 처방이라도 내놔야하는데 ‘서로 양보해서 잘 풀어라’라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말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군’으로 여겨져 오던 노동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게 고통스럽겠지만, 본인의 현실 인식대로 ‘내외 경제여건이 엄중한 상황’에 노조까지 파업으로 국가경제를 망치는 상황을 방관할 생각이 아니라면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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