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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석.’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 이미 꽃이 되어 있

  • [데일리안] 입력 2007.05.08 12:33
  • 수정

[데일리안 스포츠 매거진]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승운마저도 따라주지 않은 경기가 허다했다. 도저히 일반인들이 지켜봤을 때 ‘공을 못 던질 텐데’ 라는 상황에서도 공을 던지는 투수들을 간혹 보게 된다. 염종석은 그런 사례들을 항상 보기 좋게 깨뜨려줬다. 그의 열정은 항상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내곤 했다. 그가 신인시절부터 항상 해왔던 행동이다.


인터벌이 너무 길기 때문에, 야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 빠른 투구 뒤에 팔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팬들을 위해서, 팀을 위해서 아파도 참고 던지는 투수가 염종석이다. 언제든 그라운드를 떠날 준비는 되어있지만 항상 뒷모습은 팀을 위해서, 나를 사랑해주는 팬들을 위해서 죽을힘을 다한다는 투수가 염종석. FA로 풀렸을 때, LG 트윈스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고, 롯데와 재계약을 맺은 그가 어린 시절 우승을 한 번 하면서, 너무 많은 굴곡을 겪었다. 1984년 금테안경의 최동원이 그랬고, 1992년에는 금테안경의 염종석이 그랬다.

“다시는 공을 제가 못 던져도 좋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 나가게 해주십시오”

염종석이 1999년 플레이오프 때, 코칭 스탭진들에게 전의를 불사르며 했던 이야기다. 1999년 그가 시즌이 끝나고 수술을 받았을 때, 코치진들은 그가 이제 은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수술과 재활이 많았고, 1999년 수술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수술이었다.

입단 동기이자 라이벌이던 정민철과 그의 행보는 정민철이 2000년 요미우리 가던 당시 다시 한 번 비교가 되곤 했다. 염종석에게는 아픔이 됐을런지도 모른다. 신인시절 정민철을 누르고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그가 이제는 수술대에 올라 친구의 일본진출을 바라보고만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약속했다.

“팬들께서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돌아옵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죽을 각오로 부활하겠습니다. 제가 마운드에서 다시 공을 뿌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우리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종석은 개인적인 목표는 오로지 팀 승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롯데의 4,5선발 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롯데 선발 한자리는 손민한, 그리고 다른 한자리는 염종석이었다. 선발 순서는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했던 것뿐이었다.

“물론 10승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10승을 한동안 못했다고 해서, 꼭 10승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부산 팬 분들께서 즐거워하시고, 찾아주시면 됩니다. 그동안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죄송했습니다”

복귀 후, 2002년, 2003년보다 성적이 안 좋았던 2004년은 오히려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염종석은 계속 자신의 야구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 결과 그의 가슴속을 후벼 판 것은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명투수 워렌 스판의 명언. 그는 예전처럼 헛스윙을 유도하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느린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거기에 더 느린 슬로우 커브로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또한 타자들에 대한 분석에 더 심오하게 들어갔다. 그의 몸이 한계에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 팬들은 ‘어게인 1992’를 외친다. 그리고 마운드에는 어느 날 경기처럼 하늘색에 롯데라는 빨간색 글자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금테안경의 투수가 마운드를 지켜줄 것이다. 그가 바로 염종석이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에이스를 꼽으라한다면 박철순, 이대진의 이름을 거명한다. 그러나 롯데 팬들은 염종석의 이름을 그 명단의 맨 윗줄에 적어둘 것이다.

08년 그가 건강하다면, 시즌 도중 우리는 2000이닝 돌파라는 감격을 그와 함께 누릴지도 모른다. 야구팬들이 야구를 보는 이유? 염종석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유다.

이제 그는 선수로서 그라운드 위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모래시계는 한 바퀴를 돌고도 한참이 흘렀다. 하지만 팬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그가 마운드를 떠날 시점이 다가오지만, 팬들을 그를 보내기 쉽지 않다.

혹자들은 염종석을 반쪽투수 혹은 한물간 노장투수로 취급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보직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직야구장을 가득 메운 3만의 부산갈매기들이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그가 마운드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지금도, 그 이후에도 부산갈매기들의 영웅 그 이상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등판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그때 그렇게 던진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저는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 당신의 이름은 다름 아닌 염.종.석이기 때문이다.


☞ ‘염.종.석.’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 이미 꽃이 되어 있었다(상)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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