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잃은 시대, 간디의 경고는 무엇을 말하는가
권력과 성장의 기로에서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기준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서, 정치와 사회의 양심을 되묻다
인도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뉴델리 팔람 공군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하며 환송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Incredible India.' (믿기지 않는 인도)
한 달을 여행하면 글이 한 편 나오고, 1년을 살면 책이 한 권 나오고, 10년을 살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라.
그러나 지금의 인도는 더 이상 신비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2026년,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인도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잠자던 코끼리는 이제 세계의 중심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은 한·인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계기이자,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협력하고 성장할 것인가를 묻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뉴델리 야무나 강변의 라지 가트(Raj Ghat)를 찾아 마하트마 간디의 묘소에 헌화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오랜 질문을 다시 꺼내 드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필자는 오래전 한·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입구 대리석에 새겨진 간디의 경고였다.
'일곱 가지 사회악(Seven Social Sins).'
이경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문제를 너무도 익숙하게 재현하고 있다.
첫째,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다.
오늘날 정치는 공공선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기울어 있다. 헌법과 법률은 공동체의 기준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드는 '사법적 무기'로 전락했다. 법이 기준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순간, 정치는 이미 방향을 잃는다.
둘째, 노력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다.
노동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축적된 부는 시장경제의 정당한 결과다. 문제는 그 원칙이 흔들릴 때다. 자산 투기나 정보의 비대칭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도 책임 없는 권리와 무임승차가 용인될 때 공정성은 무너진다. 노력보다 위치와 기회가 보상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시장에 대한 신뢰는 급속히 붕괴된다.
셋째,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이다.
익명성 뒤에 숨은 혐오와 조롱, 중독적 소비와 방종이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자유가 책임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것은 결국 타인의 부담이 될 뿐이다.
넷째, 인격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이다.
교육은 성적과 스펙을 양산하지만, 공동체를 향한 성찰은 빈약하다. 지식은 쌓이지만 방향은 사라지고 있다. 무엇을 아는가 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다.
다섯째, 도덕 없는 상거래(Commerce without Morality)다.
단기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규제의 틈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가 반복된다. 신뢰를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순간, 시장은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여섯째, 인간성 없는 학문(Science without Humanity)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가운데, 인간의 존엄과 조화를 이루려는 고민은 충분하지 않다. 효율이 인간을 앞서는 순간, 발전은 목적지를 상실한다.
마지막으로 헌신 없는 신앙(Religion without Sacrifice)이다.
절제와 헌신을 전제로 해야 할 신념이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신념이 타인을 향한 배려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것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없다.
간디가 지적한 이 일곱 가지 사회악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원칙의 붕괴'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의 공공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절차적 정당성보다무조건 이겨야 하는 저열한 승부만이 남았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반칙이면 어떻고, 심판의 멱살을 잡으면 어떠냐는 몰염치뿐이다.
축구장에 난입한 훌리건이나, 축구장에서 농구하는 훼방꾼이나 관중은 아랑곳하지 않는 꼴이다.
헌법과 법률 등 근간이라는 것이 ‘적용의 기준’이 아니라 ‘굴절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명분도 책임도 뒤로한 채, 변검(變臉)처럼 얼굴을 바꾸며 포커페이스로 버티고,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는다.
정치의 원칙, 공정한 성취, 경제의 도덕, 모두의 행복, 정의의 지식, 학문의 인간성, 종교의 헌신 등,
그 당연한 것들이 무너질 때, 더 이상 살만한 사회일 수 없다.
원칙이 무너지면 승복이 어렵고, 승복이 어려우면 갈등은 폭발되고, 분열과 증오만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라지 가트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가리킨다.
그 불꽃 앞에서 '원칙'과 '양심', 국가 경영의 기초를 다시 떠올린다.
이 대통령은 라지 가트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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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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