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율 수단 없는 고의적 상장폐지 어쩌나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6.04.23 07:02  수정 2026.04.23 07:02

이정문 민주당 의원실 토론회

일부 기업, 강제 상폐 비틀어 활용

'형식적 요건'에 치중된 현 제도

우회적 관여 방안 모색할 필요성

현 제도에선 감사 결과에 따라 상폐 절차가 개시될 경우, 한국거래소 등이 형식적 요건을 점검하는 수준에서 후속 조치가 진행된다.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자료사진) ⓒ뉴시스

고의적 상장폐지 관련 규율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련 제도 개선 방향성에 관심이 모인다.


고의적 상폐로 의심되더라도 표면상 '적법절차'를 따르는 데다, 고의성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우회적 관여 방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현 제도상 기업들은 회계법인 감사 결과에 따라 '강제 상장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독립성을 보장받는 회계법인 판단을 토대로 시장 건전성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지만, 일부 기업들은 해당 제도를 비틀어 활용하고 있다.


'자진 상장폐지' 시엔 공개매수를 통해 소수주주 지분을 비싸게 사들여야 하는 만큼, 의도적으로 강제 상장폐지를 유도해 비용 최소화를 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의 상폐 의혹 대동전자
"규율체계 없고 신설도 어려워"


소수주주 권익을 강조하는 단체들은 고의적 상폐 관련 대표적 의심 사례로 대동전자를 꼽고 있다.


대동전자는 부채비율이 10% 미만, 순자산 약 2600억원의 우량한 중견기업이지만 일부 해외 자회사에 대한 감사자료 미제출을 이유로 2023년부터 3년 연속 '비적정(한정)' 감사 의견을 받았다.


이에 따라 상폐 절차가 개시됐고 지난달 코스피 퇴출이 확정됐다.


문제는 고의적 상폐 의혹에도 이를 규율할 법적 근거가 없고, 이를 신설하기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편은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관 토론회에서 "고의적 상폐 개념이 법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면서도 "소수주주를 정당한 보상 없이 축출하거나 배제하려는 시도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결론적으로 직접 규율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폐 사유를 외부에서 고의적인지 판단하는 내용을 법문으로 명확히 규제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부연했다.


현 제도에선 감사 결과에 따라 상폐 절차가 개시될 경우, 한국거래소 등이 형식적 요건을 점검하는 수준에서 후속 조치가 진행된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는 "감사 의견에 대한 부분은 회계법인의 고유 권한"이라며 "(상폐) 고의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한 판단까지는 사실상 저희 영역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판단에 기초해 상폐 절차가 시작되면, 거래소는 형식적 요건이 성립됐다고 보고 관련 심사를 진행할 뿐, 상폐 정당성까지 따질 권한이나 의무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형식적 요건 존중이라는 큰 틀은 법정에서도 유지된다. 특히 법원이 소수주주 권한 침해를 손해배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만큼, 상폐 고의성 여부는 중점적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상폐 고의성 직접 따지기보단
주주 이익 침해 관점서 접근해야


결국 상폐 고의성 여부를 직접 따지려 들기보단 주주 이익 침해 관점에서 우회적으로 관여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미국 등 선진시장에선 고의적 상폐 관련 주주 이익 침해가 발생할 경우, 금융당국 차원의 강제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임 본부장보는 미국에서는 고의적 상폐 혐의가 있을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나 법원 판결에 의해 강제적으로 공개 매수할 수 있는 법적 조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조치도 주주에게 실질적으로 합당한 가격으로 보상할 수 있는 공정가치를 직접 평가해 이뤄진다"며 "그 가격(공정가치)에 해당하는 배상을 명령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 장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 맥락에서 법원이 보수적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 조사관은 "법원이 매수가액 결정 제도를 시가 위주로 판단하는, 어떻게 보면 약간 확립된 법리 같은 것들이 있다"며 "쉽지는 않지만, 어떤 기준하에서는 시가 외에도 순가치자산,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명문 규정을 두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주식 가치 산정에 있어 너무 보수적"이라며 "법도 아니고 자본시장법 시행령 규정을 너무 추종하는 '실정법 물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 부분을 보지 못하는 형식적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 '속도 조절' 시사


금융당국은 앞서 이뤄진 제도 개선의 파급력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김미정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논의 핵심은 회사나 이사회가 결국 주주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있다"며 "상법에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됐고, 이사회 관련 가이던스도 마련된 만큼,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두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법원에서 그동안 주주의 손해에 대해 간접적 손해로 판단해 온 경향이 있었다"며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된 만큼, 법원에서 주주의 손해에 대해 다투는 과정에서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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