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망을 지렛대로”…CU사태, 노란봉투법 ‘시험대’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6.04.22 07:05  수정 2026.04.22 07:05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교섭 범위 확대…원청 책임 논쟁 부상

물류센터·공장 봉쇄에 공급망 마비…점주·제조사 피해 확산

손해배상 청구 제한에 대응 ‘난항’…제도 공백 지적

CU 사례 ‘분수령’…협상 결과 따라 업계 전반 확산 가능성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물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서울 시내 한 CU 편의점 간편식 진열대가 비어 있고, 결품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독자 제공

유통망이 노조의 교섭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편의점 CU의 상품 공급이 흔들리면서 점포 결품과 매출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교섭 책임 범위를 가늠할 시험대로 떠올랐다.


업계는 이번 사안이 단일 기업의 문제를 넘어 업계 전반의 기준을 가늠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는 분위기다.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될지에 따라 향후 유통·물류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가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압박 수단으로 삼아 요구를 관철하려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총파업과 물류 봉쇄 등 강도 높은 방식이 동원되면서, 현장에서는 공급망 차질과 제3자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시위는 민노 화물연대 편의점지부 CU지회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배송기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 중이다. 파업 초기엔 화성·안성·나주·진주 등 지역 거점 물류센터 4곳 출입구를 봉쇄했고, 17일부터는 충북 진천 BGF푸드 공장까지 출입로를 막았다.


급기야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하며 사태는 점차 격화되고 있다. 지난 20일 급한 물류를 처리하기 위해 본사가 투입한 용차(특정 기간 또는 건당 영업용 화물차에 물품 운송을 맡긴 임시 물류) 차량과에 시위 참여자가 충돌해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의 배경에는 노란봉투법이 자리하고 있다. CU 운영사인 BGF로지스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화물운송 기사들도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될 경우 교섭 요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청 운송사와의 관계에 머물렀던 교섭 범위가 원청까지 확대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문제는 가맹점주나 BGF로지스 측은 화물연대 CU지회의 물류봉쇄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제외하고는 노조나 개별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전국 가맹점에 대한 물품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고, 푸드 공장에서 생산된 김밥·도시락 등 간편식은 전량 폐기됐으며 공장 가동도 멈춘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할 뚜렷한 대응책은 없는 상황이다.


전국 1만8000여 개 CU 가맹점을 대표하는 점주협의회장이 시위 현장을 찾아 차량 출차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 발주 차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갖는다. 제품을 공급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은 출고가 막히면서 재고가 쌓이고, 일부 상품은 폐기로 이어지는 등 피해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편의점 점주뿐 아니라 식품 제조사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다.


김미연 CU가맹점주연합회 회장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점포 곳곳에서 도시락·음료 등 필수 상품 공급이 중단되며 정상 영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매출 감소와 고객 이탈 등 생존을 위협하는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노동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 방식이 자영업자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면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현재 상황은 점주를 사실상 볼모로 삼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편의점은 상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곧바로 매출 손실과 고객 이탈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과 노조 대표자들이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CU(BGF리테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 화물연대는 전날 BGF로지스를 상대로 화물기사 처우개선을 위한 교섭을 요구하며 CU 진주물류센터앞에서 연좌농성 등을 하던 중 소속 노동자가 대체차량에 치여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뉴시스

편의점업계는 법 시행 시 물류거점에서의 파업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편의점 물류는 점포 납품을 위해 지역별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상시 운영되는 구조인 만큼,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점포 운영 전반에 치명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업계 전반의 기준을 가를 수 있는 분수령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CU 사례를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거나 협상 결과가 도출될 경우, 향후 다른 편의점 및 유통업계 전반에 동일한 기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CU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업계 전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업계 1위 CU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다른 편의점이나 유통업계로 동일한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다만 CU도 현재로서는 법적 해석과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어느 한쪽도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느냐가 핵심 쟁점인데, 이 기준이 정해지는 순간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더욱 곤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 시행 시 기업 경쟁력 약화와 투자 위축 등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불확실한 노사관계 리스크가 노출된다면 외국인 투자 위축은 물론 내부적으로도 자동화·비정규직 전환 등 구조조정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섭 범위와 사용자성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는 현장 혼선과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교섭 범위와 사용자성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현장 혼선이 커지고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구조에서는 가맹점주나 소비자 등 비당사자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교섭 범위와 책임 기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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