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도읍이었던 서라벌은 고려가 건국되면서 지방도시로 전락 한다. 하지만 천년왕국 신라의 기반이었던 서라벌은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고려의 중요도시로 남게 된다. 도읍인 송악은 개경이라고 불렸고, 평양은 서경, 그리고 서라벌은 동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무신 집권기가 되면서 고려는 다양한 반란을 겪게 된다. 동경 지역 역시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비와 패좌의 반란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들은 수 백년전 사라진 신라를 다시 부흥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함께 한 고려가 더 이상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괴롭히는 상황에서 이전의 신라를 끄집어낸 것이다. 둘이 일으킨 반란은 고려사 세가보다는 토벌한 정언진 열전에 더 자세하게 나와있다.
경주 월성터 (출처 : 직접 촬영)
신종 5년인 서기 1202년, 경주의 별초군이 도적과 승려들과 함께 이웃인 영주를 습격했다. 하지만 영주 주민들의 반격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 부분을 경주 별초군의 반란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비와 패좌가 반란을 일으킨 지역도 경주이고, 이비의 직책이 도령으로 나온다. 도령은 조선시대에는 장가를 가지 않는 사대부 청년을 지칭하지만 고려시대의 도령은 중앙군과 지방군의 지휘관을 뜻한다. 최충헌이 젊은 시절 조위총의 반란을 진압할 때 받은 직책이 별초도령이었다. 따라서 이비는 경주 별초군의 지휘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경주 별초군의 영주 공격은 마치 이비의 지휘와 상관없이 움직인 것처럼 나온다. 심지어 반격한 영주 주민들의 지휘관 이름까지 나오는데 비해 경주 별초군은 따로 지휘관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고려사의 편찬자들이 왜 경주 별초군과 이비와 패좌의 반란을 별개로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주 별초군에게서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이것에 분노한 조정이 진압군을 보내자 이비가 자연스럽게 지도자로 추대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비는 최충헌이 보낸 진압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세력을 모은다. 망이와 망소이가 손청과 손을 잡고, 김사미가 효심과 손을 잡은 것처럼 연합한 것이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남쪽의 도적이라는 듯의 남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들을 뭉뚱그려서 기록했다. 최충헌을 비롯한 조정의 집권자들 눈에는 ‘그놈이 그놈’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경주 별초군의 도령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비는 운문산과 울진, 초전의 도적들과 손을 잡고 3군을 편성한 다음에 정국병마사라는 직책을 내세웠다. 패좌는 이때 이비가 손을 잡은 세 지역 중 하나인 운문산의 도적들 우두머리로 보인다. 패좌를 비롯한 도적들과 연합군을 편성한 이비는 인근 지역에 손길을 내밀었다. 달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화전 양면 작전을 쓴 것 같다. 비슷한 시기 고부군에 유배된 석성주라는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서 신라 부흥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경주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비와 연결지어서 생각할 수도 있다.
최충헌이 처음 보낸 진압군은 이들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하면서 반란은 다음 해인 서기 1203년까지 이어진다. 열받은 최충헌이 진압군의 지휘관인 김척후를 소환한다. 이때 자신의 말을 타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은 처벌의 일종으로 크게 문책당한 것이다. 실제로 개경으로 돌아간 김척후는 파면당하고 만다. 뒤를 이은 것은 대장군 정언진이었다. 그는 기양현에 침입한 반란군을 부하 장수를 시켜서 격파하면서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무당을 포섭해서 기도를 드리러 온 이비와 그의 아들에게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든 다음 생포하는데 성공한다. 이비가 사라진 후에도 반란은 끝나지 않았다. 패좌가 이끄는 반란군이 다시 기계현을 공격해오자 진압군이 그들을 공격하러 이동한다. 높은 산에서 진압군을 살펴보던 패좌가 도망치려고 하자 공격을 감행하는데 1000여명을 죽이고 250명을 생포한다. 승리한 정언진은 운문산으로 도망친 패좌에게 부하 장수인 함연수와 강숙청을 보내서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패좌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협상이 난항을 겪는 와중에 부두목이 함연수에게 눈짓을 한다. 눈치가 빠른 함연수는 잠깐 밖으로 나가서 칼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리고 패좌를 베었다. 첫 번째 공격을 피한 패좌는 반격하려고 했지만 강숙청까지 가세하면셔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삽시간에 두목을 잃은 부하들이 분노해서 둘을 죽이려고 했지만 부두목이 만류한다. 결국 패좌까지 죽으면서 둘의 반란, 그리고 경주의 반란은 막을 내린다.
이들이 진정 신라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가 자신들의 미래는 아니라고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도령이라는 별초군의 지휘관 이비와 운문산의 도적 패좌는 원래대로라면 서로 칼을 맞대고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둘은 힘을 합쳐 고려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나란히 목숨을 잃었다. 최충헌은 감히 자신에게 반기를 든 동경을 경주로 격하시키고 자신을 도운 안동을 대도호부로 승격시킨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경상도라는 지명조차 상진안동도로 바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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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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