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빛난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한 하루에도 미처 감지하지 못한 균열과 반짝임이 숨어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어느 아침,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였다. 그날 이후, 마음속에는 한 사람의 숨이 되살아나던 순간이 깊게 박제되었다. 그것은 한 생이 구해졌다는 안도를 넘어,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사람의 생명은 어느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에 가는 것은 일상이다. 그날도 샤워 후 탕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몸을 담그고 앞을 보니 뿌연 물결 아래 희미하게 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몸을 담그고 거품으로 마사지하는 줄로만 알았다. 기다려도 움직임이 없었다.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니 등이 보였고, 머리는 물속에 잠겨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등을 타고 올랐다. 조심스럽게 어깨를 건드렸으나, 손끝에 닿은 감촉은 살아 있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몸을 들어 올리자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사고다.’ 하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온몸이 긴장되었다. “도와주세요!” 반사적으로 외친 목소리는 습한 공기를 흔들어 깨웠다.
사우나에서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모습.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
샤워 중이던 한 사람이 놀라 달려왔고, 둘이 힘을 합쳐 탕 밖으로 겨우 들어냈다. 물을 머금은 탓인지 팔십 킬로는 될 법한 묵직한 무게에 축 늘어진 몸집은 온전히 죽음의 문턱으로 기울어 있는 듯했다. 얼굴을 두드리고 소리쳐 불러도 미동조차 없었다. 가슴에 손을 얹자 생이 빠져나간 듯한 서늘한 정적만 남았다. 119 신고를 위해 데스크로 간 사이 함께 옮겼던 분이 먼저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잠시 후, 멈췄던 가슴은 나지막하게 오르내리더니 희미한 숨소리가 입가에 번졌다. 재 속에서 깜빡이는 마지막 불씨처럼 위태롭지만 분명한 생의 신호였다. 꺼질 듯 가냘프나 꺼지지 않는 생명의 끈질기고도 연약한 속성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이었다.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 하는 장면.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나도 무릎을 꿇고 교대로 가슴을 눌렀다. 손바닥 아래 전해지는 갈비뼈의 탄력은 가까스로 버티는 실낱같았다. 십여 년 전, 처남의 머리맡에서 온몸에 체중을 실어 땀을 뻘뻘 흘리며 쉼 없이 갈비뼈를 누르던 젊은 여의사 모습이 겹쳐졌다. 심폐소생술은 기술이 아니라 절박함이라는 걸 배웠다. 짧은 시간에 엄습한 전율은 내 손을 더 깊고 더 강하게 가슴을 누르게 하였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느껴진 미지근한 온기는 아직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외침 같았다.
교대로 심폐소생술 하는 장면.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119대원과 경찰이 도착하기까지는 길어야 몇 분이었겠지만, 시간이 숨을 멈춘 듯 시야마저 정지된 느낌이었다. 대원들은 체온과 심박수를 체크하는 등 분주히 처치하며 보호자를 기다렸다. 뒤이어 사우나에 들어온 주민들은 신원 확인을 위해 옷장과 신발장을 뒤지며 열쇠를 찾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좁은 공간이 그날만큼은 하나의 심장처럼 뛰었다. 서로 모르던 타인들이 ‘살려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는 순간이었다. 보호자가 도착하고 들것에 실린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문 너머로 멀어진 뒤에야, 사우나에는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고 평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탕 속에서 놀랐던 내 심장은 평정을 되찾지 못한 채, 불규칙한 박동을 두드리고 있었다.
119 구급대원이 도착하여 몸 상태를 점검하는 장면.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며칠 뒤, 커뮤니티 팀장에게서 들은 소식은 생각보다 훨씬 반가웠다. 의식이 돌아왔고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손끝에 느껴졌던 미세한 생의 기척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뻐근해졌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손을 거쳤던 이의 평안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잔잔한 기쁨을 주었다.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그때 쓰러졌던 분의 친구입니다.”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친구를 살려준 은인을 만나 밥이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과장 없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라며 사양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분의 건강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토록 친구를 챙긴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진정한 벗을 옆에 두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조속히 건강을 회복한 모습.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한 달쯤 지난 후,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78세라 하기엔 맑은 눈빛과 자그마한 체구. 체중도 62킬로라 했다. 사우나에서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순간 말을 잃었다. 온몸이 물에 잠긴 채 퉁퉁 부어 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사의 경계란 참으로 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식사하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병원에 실려 갔을 때 폐 전체가 엑스레이 사진에 하얗게 나올 정도로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계속된 이뇨제 투여로 물을 빼내며 8일 만에 퇴원 후 통원 치료를 받았단다.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며 미소 짓는다. 죽었던 사람이 일주일 남짓 만에 병원을 나서다니, 설명할 수 없는 자비의 손길이 머물렀던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하랴.
건강을 회복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다시 태어난 것을 기념하려고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라는 말은 마치 한낮 햇빛처럼 내 마음속을 환하게 비추었다. 생명은 어떤 순간에는 기적처럼 활짝 펼쳐지기도 하는가 보다. 조용한 목소리로 “10월 24일, 저는 사실상 죽었다가 당신과 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라는 고백은 은은한 파문을 그리며 서서히 퍼져 나가는 빛 같은 울림이었다. 온탕의 물결 속에 멈춰 있던 그의 숨은 세계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새 생명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생명은 우리 곁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기적 같은 것이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후 가족과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 해당 사진은 AI로 제작됨ⓒ
종종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삶과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고, 우리는 서로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결속된 삶, 위급한 순간에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에세이스트 ‘조안 디디온’은 “삶은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아갈 때 비로소 유지된다.”라고 말했다.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의 숨이 다시 이어지고, 그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면 충분하다. 지금도 사우나의 물결은 여느 날처럼 잔잔하게 일렁인다. 하지만 함께 들어 올렸던 한 생의 무게만큼은 그 공간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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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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