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짧고 배우는 길다”…대학로 소극장에서 여는 인생 2막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21 08:28  수정 2026.04.21 08:29

소극장서 배우로서의 역량 시험...연출자 요구 빠르게 흡수

"아이돌 출신 유입, 소극장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

매년 수십 개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대중의 선택을 받는 팀은 극소수다. 이른바 ‘마의 7년’이라 불리는 전속 계약 종료 시점까지 버티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라지는 그룹도 부지기수다. 10대 시절을 연습실에서 보낸 이들에게 그룹 활동 종료는 직업적 상실로 이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학로 소극장은 전문 배우로 자생력을 키우는 새로운 생존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오종혁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실제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대중매체로 직행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관객과 밀접하게 호흡하는 소극장 연극이나 뮤지컬을 첫 관문으로 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인지도에 기대기보다, 연기의 기초를 다지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 행보로 풀이된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작품들에도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소극장 작품은 아니지만, 대학로 공연장으로는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라스트’(NOL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 클릭비 출신 오종혁과 제국의아이들 출신 김동준이 출연하고 있다. 오종혁은 ‘온에어’ ‘쓰릴미’ ‘오디션’ 등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무대 경험을 쌓아 연기자로서 변신을 시도했고, 이후 군 제대 후 대극장까지 오가는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았다. 김동준 역시 아이돌 시절의 이미지를 벗고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구축하며 전문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룹 활동 종료 후 소극장 연극 무대로 향해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사례도 구체화되고 있다. 소년공화국 출신 수웅은 내달 1일 개막하는 장항준 감독 원작 연극 ‘핑크트럭’(대학로스타릿홀)에 출연하며 소극장 무대의 문을 두드렸고, 스텔라 출신 전율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공연한 연극 ‘노맨틱 코미디’(열린극장)를 통해 연극 무대에 데뷔하면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들은 화려한 조명과 대형 무대 대신, 수십 명의 관객과 마주하는 소극장에서 배우로서의 본질적인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인피니트 이호원(호야), 보이프렌드 동현, 구구단 김나영, 나인뮤지스 금조 등 많은 아이돌 출신들이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대학로는 과거의 영광이나 실패를 뒤로하고, 무대라는 본질을 새롭게 다지는 장소다.


아이돌 출신들이 소극장 현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핵심 요인은 연습생 시절부터 몸에 밴 성실함이다. 수년간 이어진 혹독한 트레이닝 경험은 좁은 연습실에서 반복되는 연극 연습 과정을 견디는 밑거름이 된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대본 숙지력이 뛰어나고 무대 위에서의 동선 파악이나 안무적 감각이 탁월해 연출자들의 요구를 빠르게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수많은 무대 경험에서 비롯된 무대 장악력은 소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 미세한 감정 전달이 중요한 소극장 무대에서, 아이돌 활동으로 다져진 시선 처리와 무대 매너는 큰 강점이 된다. 과거의 인기나 인지도에 안주하지 않고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태도의 변화는 대학로 연극계가 이들을 단순한 ‘홍보용 캐스팅’이 아닌 ‘동료 배우’로 받아들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아이돌 산업의 과포화와 짧은 직업적 수명은 이들에게 늘 불안 요소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대학로 소극장 무대는 아이돌 출신들에게 지속 가능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보장하는 대안적 경로가 되고 있다. 소극장에서의 치열한 훈련은 향후 매체 연기나 대형 무대로 진출했을 때 흔들리지 않는 뿌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로의 한 공연 제작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소극장은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며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아이돌 출신들의 유입은 소극장에서도 일정 부분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관객층 다변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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