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 전면을 가로막은 거대한 투명 유리벽과 그 뒤를 채운 대형 LED 스크린,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라이브 카메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빅 마더’는 아날로그 연극 무대인지, 방송국 스튜디오인지모를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무대를 가득 채운 기술들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체이자 서사를 끌고 가는 동력이다.
ⓒ세종문화회관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빅 마더’를 각색한 이 연극은, 대선을 앞둔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대통령의 성관계 영상 유포와 이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그 배후에 숨겨진 알고리즘 프로그램 ‘빅 마더’의 실체를 추적하는 ‘뉴욕 탐사’ 기자들의 사투가 골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개 속도다.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려 58개의 장면이 교차한다. 무대 위 배우들의 움직임은 영화적 편집 기술과 결합해 쉼 없이 전환된다. 이는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유튜브 쇼츠나 SNS 피드를 넘기는 속도감과 닮아 있다. 방대한 정보와 빠른 호흡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빅 마더’의 전개 방식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효과적 전략이다.
이준우 연출은 투명 유리 세트와 라이브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점의 왜곡’을 시각화한다. 무대 전면의 유리벽은 ‘뉴욕 탐사’ 편집국인 동시에 모든 정보가 노출된 투명한 감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유리 너머로 실재하는 배우의 연기를 보지만, 동시에 카메라가 이를 증폭해 스크린에 띄우는 편집된 영상도 마주한다.
여기서 유리는 소통의 창인 동시에 차단막이다. 앵글에 따라 진실이 어떻게 가공되고 본질이 흐려지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특히 LED 스크린은 때로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가 되어 유리 안의 인물들을 압박한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공포를 통한 통제를 상징했다면, 이 작품 속 ‘빅 마더’는 인간의 취향을 분석해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현대의 알고리즘 권력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세종문화회관
이 파편화된 장면들 사이에서 극의 중심을 잡는 것은 배우들의 밀도 높은 앙상블이다. 편집국장 오웬 그린 역의 조한철은 냉철하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다가도 인간적인 빈틈과 가벼운 허당기로 특유의 유연한 호흡을 섞어내며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케이트 블랙웰 역의 최나라, 알렉스 쿡 역의 이강욱, 줄리아 로빈슨 역의 신윤지를 비롯해 1인2역을 맡은 김신기(로날드·잭슨 역)와 최호영(에단·머서 역)까지 각 캐릭터는 저마다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다층적인 구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투가 점차 하나의 서사로 결합되는 과정은 진실이 외면 받는 시대에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화려한 영상 기술과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유리세트가 연극 고유의 질감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가깝다. 오히려 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쏟아지는 영상 정보와 빠른 호흡이 주는 피로감마저 정보 과잉 시대를 표현하는 의도된 장치로 읽힌다. 연극이 동시대의 디지털 환경을 어떻게 수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작이다. 작품은 4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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