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윤의 확신 “본업 흔들 연출이라면 시작도 안 했을 것”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4.20 08:54  수정 2026.04.20 08:54

“‘누룩’, 믿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막걸리를 둘러싼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믿음과 관계를 그려낸 영화 ‘누룩’. 이 작품은 배우 장동윤이 단편 ‘내 귀가 되어’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연기에서 연출로 보폭을 넓힌 그의 첫 시도다.


ⓒBH엔터테인먼트

배우라는 익숙한 옷을 잠시 벗고 ‘감독 장동윤’이라는 낯선 이름을 달게 된 그는, 창작의 길로 들어선 과정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그의 말속에는 꾸준한 걸음의 흔적이 묻어났다.


“어느 한 시점에 결단을 했다기보다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짜는 걸 좋아했어요. 그땐 막연하게 했던 건데, 배우 활동을 하면서 현장이 익숙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시 창작 쪽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단편부터 시작해서 한 단계씩 밟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고, 처음부터 개봉까지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세간의 시선은 배우의 외연 확장에 주목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 연출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영화를 향한 오랜 팬심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결과물에 가까웠다.


“결국은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관객으로서도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다른 배우들이 연출하는 걸 보면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계기라기보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영화의 출발은 사소한 호기심과 일상의 관찰이었다.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막걸리’에 상상력을 덧입힌 이 독특한 서사는, 신뢰하는 동료와의 긴밀한 대화 속에서 점차 살이 붙기 시작했다.


“단편 영화 연출하면서 독립영화 현장에서 이태동 감독님을 처음 만났어요. 그때부터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막연했던 아이디어를 조금씩 구체화해 나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이런 거 하면 재밌겠다’는 식으로 가볍게 얘기했는데, 그게 쌓이면서 지금의 ‘누룩’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블랙코미디처럼 시작했어요. 막걸리가 만병통치약 같은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고, 코로나 시기에 구상하면서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적인 소재에 어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효능이 있다고 믿는 문화에서 출발한 이야기였어요.”


발효되어 맛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변질되기도 하는 ‘누룩’은, 어쩌면 변화무쌍한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장동윤은 이 소박한 재료를 빌려 인간의 신념과 관계라는 묵직한 화두를 꺼내 놓았다.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다시 힘을 얻기도 하고, 주변의 응원이나 비난을 받는 과정이 있잖아요. 그걸 ‘누룩’이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표현한 겁니다.”


관객들은 스크린 안팎에서 그의 모습을 동시에 보길 기대했지만, 그는 첫 장편 데뷔작인 만큼 연출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 연출작에 직접 출연할 의향은 있어요. 다만 이번에는 연출이랑 연기를 같이 하니까 집중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나중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다슬 역의 김승윤 역시 장동윤의 단편 ‘내 귀가 되어줘’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배우다.


“(김)승윤 씨가 조연출을 맡으면서 연기까지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많은 친구라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승윤 씨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배우와 스태프가 제가 배우로 활동하면서 현장에서 만났던 분들이에요. 그렇게 쌓인 인연들이 이어져서 이번 작품도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역할을 남자로 설정해서 제가 직접 출연할까도 고민했었는데, 연출과 연기를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BH엔터테인먼트

혹시라도 본업에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그는 단호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연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흔들기보다, 오히려 현장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어주었다.


“연출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라서, 본업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 오히려 배우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입장이 되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훨씬 조심스러워지고 부담도 커졌어요. 대신 그만큼 재미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캐릭터에 대해 많이 물어봤는데, 지금은 감독이 원하는 걸 빠르게 캐치해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장동윤에게 연출은 반드시 성취해야 할 거창한 목표라기보다, 표현의 갈증을 해소하는 자연스러운 분출구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연출가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창작이라는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쪽을 택했다.


“연출은 제 직업이라기보다는 창작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하는 거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꿈꿔왔던 장편 데뷔를 이뤄낸 순간,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현장의 무게를 먼저 되새겼다. 독립영화라는 척박한 토양 위에 ‘누룩’이라는 꽃을 피워내기까지, 그가 느낀 가장 솔직한 감정은 단연 감사함이었다.


“지금은 작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라서, 개봉까지 온 것 자체가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자신감보다는 겸손해지는 느낌이에요.”


때로는 서툴지라도 직접 부딪히며 얻은 답만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응원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의 마지막 답변은, 연출가로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안 해보는 것보다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를 처음 시작할 때 오래 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거든요. 연출도 비슷하게 시작한 거고요. 물론 서툴고 부족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런 과정도 다 포함해서 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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