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둔 김준석 KOMSA 이사장
지난 3년 ‘격동의 시대’ 소회 남겨
역할 커진 KOMSA, 역량 증명해야
“외부 시각으로 스스로 노력해야 성공”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이사장은 조만간 조직이 어려운 시기를 겪을 거라고 했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가 조직을 떠나기 전 ‘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이 위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KOMSA가 다시 한번 성장통을 겪을 때가 됐다는 확신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2022년 11월 취임했다. 당시 KOMSA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E’를 받았다. 전임 기관장은 해임됐고, 후임으로 김 이사장이 왔다.
경영평가가 해당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100%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평가 지표가 모든 공공기관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도 않는다. 기관 특성상 평가 지표가 애초부터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경영평가 점수는 내부 조직원들 사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E등급과 같이 최악의 성적표로 기관장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김 이사장이 취임 직후 경영평가 등급 개선에 나선 이유다.
김 이사장은 경영평가가 나빴던 이유를 조직 기능 확대에서 비롯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 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해(2022년)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은 것은 2019년 여러 가지 역할과 기능이 대폭 확대됐는데, 이 부분이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부임 직후부터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5본부를 4본부로 줄이고 부서도 74개에서 55개로 통합했다. 인력도 감축했다.
느슨했던 조직에 고삐를 죄면서 한편으론 다양한 신규 사업을 통해 역할을 확대했다.
사업 측면에서 김 이사장은 KOMSA 업무 프로세스와 서비스 제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MTIS)’이다. 김 이사장은 MTIS를 단순한 정보 취합 도구에서 정책 고객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서비스 도구로 발전시켰다.
MTIS는 초기 데이터 수집·분석 기능을 넘어 현재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와 함께 여객선 교통정보, 실시간 해양교통 혼잡도, 선박 안전관리까지 담당한다. 특히 기존 PC 기반의 정보 제공을 모바일로 확대해 손안에서 선박의 종합적인 안전관리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MTIS는 어업인 등 선박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맨 왼쪽)이 7일 제주~목포를 운항하는 퀸제누비아호에 승선해 안전관리 실태를 살피고 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향후 3년 KOMSA 역할 본격 확대…제대로 준비해야”
MTIS 변화와 함께 ‘안전관리’ 관점도 달라졌다. KOMSA의 핵심 역할은 해양 사고를 줄이는 것인데, 그동안은 선박이라는 하드웨어만 봐왔다는 게 김 이사장 판단이다. 김 이사장은 선박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놔야 사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어선원 안전과 보건 분야는 그동안 해양사고 저감을 위한 미씽 링크(missing link)였는데, 그 틀을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제 어선안전조업법 개정 이후 KOMSA에는 안전 보건 매뉴얼, 위험성 평가, 어선원 건강검진, 감독 체계와 같은 기반을 만들었다.
연구개발과 정책 연구 위상도 김 이사장이 꼽는 성과 중 하나다. 과거 현장 실증이나 법규화 지원의 보조 역할에 그쳤다면 현재는 인공지능(AI) 충돌 예방 연구, 어선용 자가진단 시스템(OBD) 등 KOMSA가 기획하고 설계해서 정부에 제안하는 사업들이 늘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바로 해양 사고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0년 3156건 발생한 해양 사고는 2024년 3255건으로 소폭 늘었다. 해양 사고 저감이 KOMSA의 핵심 역할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김 이사장은 어선 사고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구조적 원인에서 찾았다. 현재 어선 관련 규제 자체가 30년도 훌쩍 넘어 현재 환경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장은 “지금의 바다 환경이나 조업 환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톤(t)수 제한이나 구조 기준 같은 제도 손질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도 그런 필요성은 받아들이는 데, 결국 KOMSA가 그걸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마무리하지 못한 사업은 국가보조항로 29곳에 대한 여객선 공영제다. 여객선공영제는 섬 주민 이동권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일부 비용을 지원하거나 항로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제도다. 3년 6개월 전 김 이사장이 부임할 때부터 주어진 임무였으나 아직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만약 여객선 공영제를 KOMSA가 담당한다면 내부적으로는 큰 과제를 맡게 되는 것”이라며 “기존에 하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른, 마케팅을 해야 하고 운영 인력까지 관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 재임 기간 KOMSA는 해양교통정보 빅데이터 분석, 국가 연구개발 사업 확대, 자율운항선박 인증, 항만보안심사 대행, 어선원 안전·보건 지원 등 조직 역할을 크게 키워왔다. 앞으로도 여객선공영제와 같이 주민 해상교통권 문제나 선박 안전보건 정책 지원, 연구개발 기능 강화 등 그 영역을 계속 확장해야 한다.
이는 KOMSA에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다는 게 김 이사장 진단이다. 약 4년 전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을 때 KOMSA는 기능과 역할을 한창 키워가고 있었다. 할 일이 늘어나는 만큼 조직은 부담도 커진다. 늘어난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향후 3~4년 KOMSA는 또다시 그때 상황을 반복할 것이라는 게 김 이사장 판단이다. 지난 3년간 밑바탕을 다져왔다면 앞으로 3~4년 동안 실제 성과로 보여줘야 하는 시기다. 제대로 준비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옳다 싶으면 밀어붙여…직원들 고생 많았을 것”
김 이사장은 직원들이 내부의 시각이 아닌 외부의 시각에서 조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KOMSA가 민간 기업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갖춘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소망도 남겼다.
더불어 직원들에게 스스로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KOMSA 특징은 전문기술 인력이 현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부서장은 물론 경영진까지 담당할 수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예를 들어 KOMSA는 특정 직렬로 들어오더라도 연구개발, 국제업무, 경영관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할 기회가 열려 있다”며 “이런 기회는 본인이 역량을 쌓고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 이듬해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사내 방송을 통해 경영평가 등급이 E에서 ‘C’로 높아졌다는 결과를 알리자, 직원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가 8층 이사장 집무실까지 들릴 정도였다.
단순히 성적이 올랐다는 기쁨을 넘어, 신임 이사장이 제시한 방향성을 믿고 따라온 결과에 대한 신뢰의 확인이었다. 그는 부임 초기 직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경영평가 등급 상승이 그 시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현재 KOMSA는 신임 이사장 공모를 진행 중이다. 2022년 11월 취임해 3년 임기를 훌쩍 넘긴 김 이사장은 떠날 때가 돼서야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저는 조직과 저를 동일시하는 성향이 좀 있다. 그래서 제 판단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일을 세게 밀고 가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하거나 힘들었던 직원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원래 일을 무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지난 3년 6개월은 온 힘을 쏟아부었어요. 공직 생활 30년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코로나19가 극심했던 해운물류국장 시절이었는데, 그때 물리적 근무 시간 때문에 힘들었다면 지난 3년은 정신적 스트레스, 자원의 한계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든 만큼 직원들도 정말 고생 많이 했을 겁니다. 못 보던 스타일의 CEO와 3년을 함께했으니까 정말 힘들었겠죠. 늦었지만 고마움을 전하고, 직원 모두의 미래에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 1970년생 김준석 이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93년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몸담았다. 해양수산부 해양산업정책관, 정책기획관, 해운물류국장을 거쳐 수산정책실장을 끝으로 해수부를 떠났다.
김 이사장은 해양수산 분야 전반에 대한 전문성과 탁월한 업무추진력을 높게 평가받는 인물이다. 해수부 재임 당시에는 황종우 현 장관 등과 함께 해수부 ‘3대 천재’로 불릴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실제 어린(?) 나이에 초고속 승진하며 동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물론 이른 승진으로 50대 초반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고, 만 55세에 현업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의 경험과 열정, 탁월한 업무 능력을 아는 이들은 김 이사장의 끝은 여기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퇴임 후 건강 관리와 함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복귀할지 알 수 없지만, 30년 넘는 경험이 좋은 곳에서 널리 활용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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