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영(이모셔널씨어터 대표) 무대 디자이너 인터뷰
"LED는 배경 아닌 ‘빛의 소스’, 입체적 판타지를 만드는 전략"
화려한 LED 뒤에는 언제나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배우를 꿈꾸던 청년에서 국내 최고의 무대 디자이너가 된 오필영. 그가 세운 ‘이모셔널씨어터’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기술’과 ‘감정’을 동시에 가져간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관객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비전이다.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이모셔널씨어터
현재 오필영 디자이너는 무대, 조명, 영상 등 개별 파트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 디자인을 지향하며 실제 제작 현장의 생태계를 바꿔나가고 있다.
“저희 회사는 현재 조명, 영상, 무대 소품 디자인을 통합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앞에 붙는 수식어들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특정 영역을 돋보이게 하는 대신, 모든 요소가 하모니를 이뤄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죠. 무대나 영상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입니다.”
그가 이처럼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는 결국 기술이 철저히 ‘도구’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어떤 기술이 있기에, 이를 무대에 쓰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작품의 이야기가 기준이 되어야 하고, 디자이너들은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 방법이 때로는 LED 스크린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물리적인 세트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결국 중요한 것은 작품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표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2009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해를 품은 달’ ‘드림걸즈’ ‘드라큘라’ ‘싱잉 인 더 레인’ ‘요셉 어메이징’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베토벤’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굵직한 대형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특히 영상 기술 활용의 분기점이 된 작품으로 꼽히는 ‘데스노트’는 이모셔널씨어터의 설립 이후 처음 함께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 무대미술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실내 건축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데스노트’의 성공은 단순히 무대 전면을 LED로 채운 파격에 있지 않다. 사신의 관점에서 인간 세상의 운명이 결정되는 찰나의 순간을 시각화하기 위해 디지털의 확장성을 선택한 점이 핵심이다.
“사신이 보는 인간의 하찮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신 입장에서 사람의 운명은 획 한 번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작은 존재인데, 우리가 그렇게 서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작품의 주제였죠. 사신이 그리는 선 하나가 인간의 공간을 창조한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표현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뮤지컬 '데스노트' ⓒ오디컴퍼니
디지털 영상과 무대에 실재하는 배우의 현장감이 충돌하는 이질감의 문제에 대해 오필영 디자이너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는 LED를 ‘장면을 설명하는 배경’이 아니라 무대 전체의 광원을 결정하는 ‘빛의 소스’로 정의했다. 영상 속 사물이 맺히는 빛의 방향과 실제 무대 조명이 배우에게 쏟아지는 방향을 정교하게 일치시켜 입체적인 판타지를 창출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이건 영업 비밀이라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웃음), 저는 LED를 빛의 소스로 이해합니다. LED를 배경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품에 도움을 주는 방법이 굉장히 제한되죠.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빛의 반사이기 때문에 콘텐츠 안에 들어가는 영상도 빛이 반사된 결과물로 표현해야 합니다. 영상 속의 빛의 방향과 실제 조명의 방향을 정교하게 일치시키는 작업을 간과하면 무대는 금세 입체감을 잃고 플랫해집니다.”
영상이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 결국 활용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술이 상상력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를 더 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세트 역시 실제 배경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면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저는 대본을 읽을 때 그 속의 공간 설명을 다 지우고 인물의 정서와 이야기에만 집중합니다. 인물의 내면을 따라갈 때 기술은 비로소 상상력을 돕는 도구가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보다, 관객이 이 작품의 이야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느냐가 디자이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그가 꿈꾸는 무대는 기술의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 이야기의 생명력만 남는 곳이다.
“관객분들은 늘 새로운 것을 볼 권리가 있고, 작품을 온전한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술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술이 서사를 앞지르지 않고, 창작자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완벽한 조력자가 될 때 비로소 무대 예술의 진정한 확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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