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에서 바냐로…‘아재’vs‘삼촌’, 고전의 정면승부가 불러온 연극적 시너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16 07:45  수정 2026.04.16 07:45

손상규 연출 '바냐 삼촌' 5월 7일 LG아트센터 개막

조광화 연출 '바냐 아재' 5월 22일 국립극장 개막

지난해 연극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가 동시에 무대에 올린 ‘헤다 가블러’였다. 헨리크 입센의 고전 명작을 두고 벌인 두 제작 극장의 대결은 관객들에게 ‘비교 관람’이라는 새로운 재미를 안기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LG아트센터 '바냐 삼촌' ⓒLG아트센터

그리고 올해, 두 극장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면승부에 나선다. LG아트센터는 원작의 본질에 집중한 ‘바냐 삼촌’(5월 7일~31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을, 국립극단은 한국적 정서를 덧입힌 ‘반야 아재’(5월 22일~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를 각각 선보인다.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은 고전의 원형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미장센을 구축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손상규 연출은 바냐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특히 삼촌 바냐와 조카 소냐의 관계에 주목하고 제목을 ‘아저씨’가 아닌 ‘삼촌’으로 정했다고 밝힌 만큼, 인물 간의 미세한 심리적 균열과 관계의 파동을 포착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서진과 고아성의 연극 무대 데뷔는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화제성이다. 이들이 체호프의 문체와 만났을 때 발생하는 연극적 에너지는 기존 연극 팬뿐만 아니라 대중의 시선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는 제목에서부터 과감한 번안을 예고한다. 조광화 연출은 19세기 러시아 시골 영지의 권태와 허무를 2026년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중년 정서로 치환한다. ‘아재’라는 표현은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라,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인물들의 비애를 한국적인 해학으로 풀어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조성하, 심은경, 손숙 등 노련한 배우들의 앙상블은 텍스트가 가진 무게감을 로컬라이징된 정서 속에서 단단하게 받친다.


국립극단 '반야 아재' ⓒ국립극단

이러한 동시기 상연에 대해 현장의 창작자들은 경쟁보다는 동질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손상규 연출은 지난해 ‘헤다 가블러’ 사례를 언급하며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의 공연이 모두 재밌었다”며 “이번 두 편의 공연을 앞두고 주변에서 우려 섞인 질문을 하는데, 별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오히려 “상대 극장에 대해 동질감이나 응원을 받는 느낌이 든다. 국립극단이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풀어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나 역시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역시 이번 ‘바냐 대전’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시대가 ‘바냐 아저씨’를 불러내는 것 같다”며 삶의 허무와 마주한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유효함을 시사했다. 또한 관객들에게 “한 번 공부하고 복습하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저희 공연이 먼저 시작되는 만큼, 이를 먼저 관람하고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를 연이어 본다면 고전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한국 공연계의 제작 역량이 상향 평준화된 결과로 분석한다. 검증된 고전 IP를 바탕으로 각 극장의 미학적 색깔을 드러내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관객들에게 ‘같은 재료, 다른 레시피’를 맛보는 즐거움을 주면서 시장 전체적으로는 특정 작품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지난해 ‘헤다 가블러’ 당시에도 매체나 평론가는 물론, 공연 관계자 심지어 연극 팬들 사이에서도 두 극장의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흐름이 있었다”면서 “이번 ‘반야 대전’도 우연히 시기가 겹쳤다고 하지만, 향후 극장들이 주도적으로 이런 기획성 공연을 해도 시너지가 좋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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